南기업 31% “北과 분쟁땐 해결책 없어 피해 감수”
“남북경협 활성화 위해선 北의지 중요” 34% 꼽아
“무상지원 아닌 北노력으로 이익 얻게 해야” 건의
북한에 투자하거나 북한과 교역하는 남한 기업 가운데 상당수 회사가 북측과 분쟁이 생겼을 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피해를 감수하거나 다음 거래 때 적당히 타협하는 방식을 취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 대북사업 업체들은 남북경제협력 방식에 대해 ‘남한이 적극 나서지 말고 북측의 적극적 자세가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가 4일 입수한 한국무역협회의 ‘남북교역 2008년 전망 및 애로사항’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 보고서는 무역협회가 올해 초 대북 사업 업체 373개사에 설문지를 배포해 120개 업체의 응답을 분석해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업체의 30.8%가 ‘북측과 분쟁이 생기면 그냥 피해를 감수한다’고 대답했고, 49.2%는 ‘다음 주문(오더)에서 타협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는 셈이다.
대북 투자나 남북교역상 애로사항으로도 ‘클레임(불만) 해결수단 부재’(15.5%)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높은 물류비와 통신 문제(각 12.7%), 남한 업체 간 과당 경쟁(10.2%), 통행 문제(9.7%), 북측의 일방적인 단가 인상(9.1%) 등을 꼽았다.
A4 용지 36쪽 분량의 이 보고서 말미에 실린 ‘기업들의 건의사항’에서는 “현재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무상 지원이 너무 많다”며 “북한 사회가 경제적 이익을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남한) 정부의 지원 및 제도 개선’(35.8%)만큼 ‘북한의 적극적 의지’(34.2%)를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대북사업 업체들조차 개성공단 진출에 대해서도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출 의사가 없다’는 업체가 30.0%였고, ‘통신 통행 통관 문제 등 제반여건이 갖춰져야 진출 의향이 있다’는 35.0%였다. ‘기회 있으면 적극 모색하겠다’는 응답은 19.2%에 불과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북측은 남북경협을 ‘상호 이익을 위한 협력’보다 ‘남한에 대한 시혜’로 여겨 온 측면이 있다”며 “남북경협이 자주 마찰을 빚고 어려움에 봉착하는 이유도 이런 기본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측면이 많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의 언론보도 내용을 일일이 점검해 나중에 트집을 잡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경협 사업자들의 애로사항이나 개선방향을 제시한 이 같은 보고서가 공개된 적은 거의 없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