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노건평 씨는 세종증권 사건이 불거진 초기에 “동생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안 됐다. 비서관이 나중에 전화를 걸어 ‘전화하지 마시라’ 하고 끊더라”며 섭섭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만큼 동생이 분노하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큰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후 둘째 형인 노건평 씨가 세무공무원을 하며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집안을 돌봤다. 대통령 리더십 연구자인 최진 씨는 “각종 기록과 증언을 모아보면 두 형제는 할 말 안할 말 가리지 않을 정도로 끈끈한 사이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고시 공부를 한 네 평짜리 토담집 ‘마옥당(磨玉堂)’도 형제가 함께 지었다.
노건평 씨는 노 대통령 집권 초기에 몇 차례 물의를 일으켰다. 국세청장 후보로는 아무개가 좋다고 말하는가 하면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시골 형님 좀 가만 놔두라”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막후에서는 형님에게 “그러다가 5년 뒤에 큰일 납니다”라고 단단히 충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사인데, 노 전 대통령이 남쪽 고향에 떨어져 사는 손위 형님을 완벽하게 묶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형님 통제’ 실패
이번 계제에 은인자중하고 있는 이상득 의원을 거론하는 것은 결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 의원은 노 씨와는 정치적 비중과 격(格)이 다르다. 6선 의원에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 의원은 정관계의 생리를 꿰뚫고 있어 노 씨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이 대통령 집권 초기에 측근 그룹이 벌인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만사형통(萬事兄通)’이니, ‘권력의 사유화’니 하는 직격탄을 맞았다. 스스로 “동생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들어온 부탁이 1000건은 된다. 이력서가 들어와서 교회를 못 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이상득 명박 형제는 여섯 살 차다. 이 대통령은 필자와의 인터뷰(신동아 2003년 7월호)에서 “형이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올라갔을 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같이 살지 않았습니다. 상득이 형이 공부를 잘하고 나는 어렸으니까 집안에서는 형 하나만 공부시키자고 했죠”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공부 잘하고 잘생긴 큰아들을 선택해 가정의 전 역량을 집중했다. 이 바람에 이 대통령은 고교 진학을 포기할 위기에 빠졌으나 담임교사가 “야간학교는 학비가 들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설득해 동지상고 야간부에 가까스로 진학할 수 있었다.
이 대통령에게 상득 형은 우상이었고 콤플렉스의 대상이자 역할모델이었다. 형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코오롱에 입사해 18년 만에 사장이 됐다. 동생은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해 12년 만에 사장이 됐다.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국회의원이 되는 길도 형이 4년 먼저 개척했다. 이상득이라는 역할모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명박 대통령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의원을 잘 아는 인사는 “CEO 생활을 오래 하며 접대하는 습관이 몸에 붙은 사람”이라며 “지금도 식사를 하면 먼저 계산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 그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을 때 한 육사 선배가 전화를 했다(이 의원은 육사를 다니다 부상으로 중퇴했다). 이 위원장은 벼슬도 없던 선배에게 “제가 찾아가 말씀을 듣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사무실로 찾아와 수첩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받아 적더라는 것이다. 이런 성품이 사인(私人) 간에는 인간적인 매력이겠지만 공인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어려운 형님’ 이상득 의원
그가 여러 해 전 젊은 의원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한잔하는 저녁 자리에서 젊은 의원이 술집에서 만난 러시아인의 아파트에 가서 한잔 더 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러시아의 치안 불안을 설명하며 말렸지만 젊은 의원은 듣지 않았다. 이 의원은 호텔로 혼자 가지 않고, 거의 아들뻘인 의원이 러시아인의 아파트에서 한잔 더 하고 나올 때까지 택시 안에서 기다렸다가 호텔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이렇게 정성으로 의원과 당인들의 마음을 사 동생의 대권 진입을 도왔다.
노 전 대통령과 ‘형님’의 관계에 비해 이 의원은 어느 모로 보나 이 대통령에게 ‘어려운 형님’이다.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역대 대통령의 어떤 ‘형님’보다도 ‘파워풀한 형님’이 될 여건을 갖추고 있다. 70대 중반에 접어든 6선 의원이 ‘대통령 형님’으로서 정치 인생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처신은 세인의 주목을 피하기 어렵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