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8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동맥경화성 질환을 앓고 계셨던 아버지와 장인, 장모가 비타민C 덕분에 증세가 크게 호전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일부 동료의사는 “비타민C가 동맥경화에 효능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고 필자는 그들의 지적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비타민C와 동맥경화의 관계를 알아보는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때마침 인간과 마찬가지로 비타민C를 체내에서 합성할 수 없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실험용 생쥐들을 입수하게 됐다. 이 쥐들은 사람처럼 비타민C를 일정기간 섭취하지 못하면 괴혈병으로 죽음에 이른다.
5주 정도 지나자 비타민C를 섭취하지 못해 심한 빈혈 현상을 일으키고 체중이 줄며 죽는 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10일이 지나자 모든 쥐가 비타민C 결핍으로 죽었다.
죽은 쥐들의 혈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죽은 쥐의 동맥 혈관을 떼어내서 내피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혈관에 미세한 손상이 군데군데 있는 것이 보였다.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도 정상 생쥐보다 1.5배 높았다. 특히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은 유난히 많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은 적었다. LDL은 동맥경화의 주범인 반면에 HDL은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쥐들은 혈관과 혈액 상태가 대단히 나쁜 상태로 죽음을 맞은 것이다. 동맥 내피는 손상되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너무 높았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비타민C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사람에게 동맥경화성 질환이 잘 올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필자 가족들은 모두 20년 이상 비타민C를 열심히 복용하셨다. 그 덕분인지 아버지는 오랜 당뇨병 때문에 동맥경화가 생겨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지만 11년 이상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또 장인도 오랜 고혈압으로 한쪽 눈을 거의 실명할 뻔했고 장모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으나 최악의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다.
비타민C는 혈관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이다. 남용해서는 안 되지만 비타민을 꾸준히 복용하면 건강 유지에 크게 효자 노릇을 할 것이다.
이왕재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