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의보 전국민 의무가입… 가격-서비스로 경쟁
《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비비아니(43) 씨는 최근 2년째 이용해 오던 스위카 민영의료보험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아슈라 민영의료보험사와 계약했다. 아슈라사가 스위카사보다 월 의료보험료가 40프랑(약 4만8000원) 적기 때문이다. 비비아니 씨는 “수입이 많지 않아 의료보험 서비스보다 보험료가 더 중요하다”며 “병원을 많이 찾지 않기 때문에 보험료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덧붙였다.》
형편따라 본인부담등급 선택 의료 과소비 줄여
소득 하위 10% 국가 전액지원… 중산층은 부담
○ 제네바에만 민영보험사 50여 개
스위스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건강보험공단이 없다. 우리나라 건보공단이 담당하는 업무를 민영보험사가 담당하는데 전국에 90여 개의 민영보험사가 있다.
그러나 민영보험 체제라고 해서 의료서비스 사각지대는 없다. 1996년부터 모든 국민이 한 보험사에 의무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건강보험 업무를 민간 영역에서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외교관, 국제기구 근무 외국인, 외국 유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도 민영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민영보험사는 가격과 서비스로 경쟁한다. 소비자는 보험사들의 보험료 가격표를 비교한 후 보험상품을 선택한다. 서비스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년 다른 회사로 바꿀 수 있다.
패트릭 마자페리 스위스 제네바 주 정부 질병정보국 매니저는 “제네바에만 50여 개의 민영보험사가 있다”며 “가격, 서비스 경쟁을 통해 의료 재정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의 홀랑 시그 박사도 “일반인이 보험사를 선택할 수 있고 의료의 질이 높다는 것이 스위스 보험제도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병원 이용 정도에 따라 보험료 차등
스위스의 의료보험은 병원 이용 정도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오남용을 막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6개월간 낸 진료비가 200만 원을 넘으면 그 다음부터 전액 면제된다. 이런 제도를 ‘본인부담상한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스위스는 6개 등급의 본인부담상한액이 있다.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은 상한금액이 가장 낮은 1등급을 선택한다. 이 경우 월 보험료는 비싸지만 상한금액을 넘으면 진료비를 내지 않는다. 반대로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면 상한금액이 높은 6등급을 선택하는 대신 적은 보험료를 낸다.
예컨대 1회 진료비가 300프랑일 경우 환자가 상한금액이 2500프랑인 6등급을 택하면 8회 진료까지는 매번 진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9회째가 돼야 진료비를 내지 않는다. 병원을 자주 가는 환자라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반면에 이 환자가 상한금액이 300프랑인 1등급을 택했다면 1회 진료비만 부담하면 된다. 2회부터는 돈을 내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에 자주 간다면 1등급을 택하는 것이 낫다.
대체로 1등급 보험료가 6등급보다 50% 정도 더 비싸다. 비비아니 씨가 선택한 아슈라사의 1등급 보험료는 386프랑이지만 6등급 보험료는 239프랑이다.
마자페리 매니저는 “상한금액 등급 시스템은 환자가 자신에게 맞는 등급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진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진료비용이 비싼 것이 단점
스위스는 보험료 책정 때 소득은 고려하지 않고 나이가 같으면 보험료를 동일하게 매긴다. 그 대신 소득 수준이 하위 10%에 속하는 저소득층은 정부가 진료비를 전액 지원한다.
시그 박사는 “저소득층은 국가가 부담하지만 중산층은 고소득자와 같은 보험료를 내고 있어 부담이 큰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스위스 중산층은 미국 다음으로 의료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지역별로 진료수가도 다르다. 도심일수록 병원 진료비가 비싼 편이다. 가장 진료비가 비싼 제네바의 경우 하루 입원진료비가 약 1300프랑(약 156만 원)이나 된다.
제네바에 사는 교민 박모 씨는 “보험료와 진료비가 모두 너무 비싸 6등급을 선택했지만 웬만큼 아픈 것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네바=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4회에는 ‘국가가 의료보험 전담-영국 편’이 나갑니다.
■ 무임승차 논란 피부양자제도
아시아권만 가족단위 혜택
억대 재산가도 보험료 안내
스위스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가족건강보험제도가 없다. 갓난아기도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보험료 부담이 적지 않다.
부부와 미성년 자녀 2명으로 이뤄진 가족은 평균 1050프랑(약 120만 원)을 매달 보험료로 낸다. 개별적으로 보험료를 내기 때문에 ‘피부양자’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대만 등 가족 개념이 발달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피부양자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국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들은 1인당 평균 1.63명의 피부양자를 두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직장가입자와 친인척 관계이고 △직장가입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본인의 소득 또는 보수가 없으면 피부양자로 올릴 수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피부양자는 180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가입자의 자식(직계비속)이 883만 명으로 가장 많고 부모 432만 명, 배우자 392만 명, 형제자매 78만 명의 순이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소득이 같다면 피부양자가 1명이든 10명이든 보험료가 같다. 월 급여가 300만 원이면 피부양자 수에 관계없이 누구나 7만6200원(회사도 7만6200원 부담)의 보험료를 낸다.
그러나 이 점을 악용해 소득이 있으면서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올리고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래서 ‘건강보험 무임승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 중에 1억 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78만 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피부양자 중에 10억 원을 초과한 재산가도 6592명이나 됐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스위스와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피부양자 제도를 없애거나 피부양자 수를 제한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며 “다만 소득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피부양자로 등재한 사람들을 찾아내 건강보험료를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