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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영은 이상우의 행복한 아침편지]두 아들 지금처럼만 해다오

입력 | 2008-12-08 11:10:00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둘이나 키우다 보니, 돈은 벌어도 벌어도 어디로 새는 건지 늘 부족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몸도 약한 집사람이 맞벌이를 시작했고, 제가 요즘은 우리 아이들의 공부며 숙제를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두 아이를 가르쳐도 둘째는 ‘3년 된 서당개’ 마냥 뭐든지 척척 알아듣고 빨리빨리 이해하는데, 큰 애는 도무지 제 욕심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일단 ‘큰 녀석을 잘 가르쳐 놓으면 작은 녀석이 알아서 따라와 주겠지’하고 큰 애부터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매일 아침 큰 애를 두드려 깨우면 큰 애는 마치 불에 달구어진 오징어마냥 몸을 배배 틀면서, 몸을 꼬고, 더 자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런 애를 불러다 책상에 앉혀놓으면 “아빠는 왜 나만 깨워요∼ 나도 동생처럼 더 자게 해주세요∼” 하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그런 애를 달래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큰 애를 가르칠 때, 아무리 교양 있고 세련된 아빠처럼 보이려고 노력을 해도 애가 너무 쉬운 걸 모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자꾸 손이 올라갔습니다. 제 아들은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먼저 제 눈치부터 봅니다.

그러면서 일단 아무거나 하나 찍어봅니다.

그러니까 정답은 “에∼∼∼ 2번?” 이러면서 제 눈치를 보다가 “이∼ 아니라 3번이지요. 아빠?” 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답은 2번도 아니고 3번도 아니고 4번입니다. 또 주먹이 불끈 쥐어집니다.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혈압이 올랐다 내렸다 합니다. 그에 비하면 둘째 녀석은 저녁에 학습지를 시키면 혼자 엎드려서 쓱싹쓱싹 풀고 놀면서 자기 할 거 합니다. 둘째는 제일 좋아하는 게 바둑인데,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바둑선생님’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바둑을 좋아합니다.

학교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방과 후 특기적성 과목으로 두 가지 특기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했는데, 둘째는 주산과 바둑을 골라서 무료로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번엔 제가 “너 바둑 선생님 말고, 의사해라. 의사가 돈도 잘 벌고, 멋있잖아” 했더니 둘째는 “전 의사 싫어요. 바둑 선생님 해서 매일 바둑만 두고 살 거예요. 아빠는 말리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큰 녀석은 옆에서 “그러면 아빠. 제가 의사가 될까요? 아빠가 좋아하시면 제가 할게요”이러면서 아부를 떨지만 막상 공부는 안 합니다. “너 의사 된다면서? 근데 그 실력으로 되겠어?”라고 하면 이 녀석은 “그건 앞으로 10년도 더 남은 이야기잖아요. 지금은 의사가 될 수 없잖아요” 이러는 겁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보고 온 날, 큰애는 평점이 81점이었습니다. 떨어지지도 않고, 올라가지도 않고, 그냥 보통 때랑 비슷한 성적입니다.

하지만 작은애는 이번에도 평점 95점을 넘기면서 의기양양하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며칠 후 제 아내가 “여보. 얘기 들어보니까 큰애 시험이 진짜 어려웠나봐. 저쪽 아파트에 사는 애들도 다들 성적이 엄청 떨어졌대. 걔네들은 학원 몇 개씩 다니면서 공부하는 애들이잖아. 그런데도 성적이 떨어진 거 보면, 당신이 그래도 잘 가르치긴 가르쳤나봐. 우리 애는 성적이 그대로니까 오른 거나 마찬가지잖아” 라고 위안을 주었습니다.

비록 형편이 어려워서 앞으로도 학원은 자주 못 보내주겠지만,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서 나중에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 두 아이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빠 뜻을 거스르지 않고 잘 따라와 주는데,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착하고 건강한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납니다.

서울 동작 | 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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