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아직도 친이-친박…이러니 국민이 짜증내는 거죠”
“한미 FTA 국회 비준, 오바마 정부 출범 후로”
“진중권 씨요? 별로 저는 신경을 안 써”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승리도 패배도 개의치 않는 소심한 영혼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다는 겁니다. 적어도 이재오 최고(위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손학규, 정동영, 이재오 모두 와서 국민의 관심을 끌고 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나라당 방미 의원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전여옥 의원을 서울 영등포구 당산1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에게 방미 성과를 묻던 중 미국 체류 중인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봤는지를 넌지시 물었다. 전 의원은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지 않았다”면서도 그의 복귀설에 대해 자신의 적극적인 생각을 털어 놓았다.
“이재오 의원의 복귀설이 계속 나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빈자리가 크다는 반증이겠죠. 그는 승리도 낙선도 두려워 않고 자신을 던진 정치인이라고 평가합니다. 다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정치인으로서 통합의 정치, 하나의 정치, 배려의 정치를 했다면 더 큰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아쉽습니다. 이재오 의원의 거취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지만, 이재오 의원이 와서 동맥경화된 것 같은 당분위기를 쇄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 의원은 당내 분파주의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 경제위기로 이명박 대통령의 당내 입지는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기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또 친박계의 물밑 세 확산 현상을 시사하는 주이야박(晝李夜朴ㆍ낮은 친이계 밤은 친박계) 월박(越朴ㆍ친박계로 넘어감) 복박(復朴ㆍ친박계로 복귀) 본박(本朴ㆍ본래 친박계) 원박(源朴ㆍ원래 친박계) 등의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는 “경선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친박, 친이로 갈려져 있는 게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환멸과 짜증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목표는 정권재창출이 아닙니다. 지금 대권을 걱정해가지고 되겠습니까. 당이 지금 어려운데 이명박 대통령과 모두 함께 가야죠. 그가 실패한다면 한나라당에서 어느 누구가 대통령이 된다고 보겠습니까. 우리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드리면 정권 재창출은 자연스럽게 가능한 겁니다.”
전 의원 자신 역시 지난 대선 이후 친박 측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18대 총선이 한창이던 때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그의 낙선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저는 언제나 이 나라 국민의 편에서 정치를 했습니다. 박사모 같은 분들은 제 선거를 방해하면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것을 힐난하며 저 보고 배신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정치인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후보가 정권교체를 가져다 줄 것인지를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개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은 제게 없을 겁니다.”
전 의원은 지난 1일 정몽준ㆍ김장수ㆍ홍정욱 의원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하원 외교위원장으로 유력한 민주당 게리 에커먼 의원, 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지 편집장 등 오바마 당선자 측 인사들을 만나 ‘한미 FTA’와 ‘북핵문제’ 등에 관해 의견 교류를 하고 7일 밤 돌아왔다.
전 의원은 “미국은 지금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로 호떡집에 불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국 측에 ‘한미 FTA’와 ‘북핵 문제’에 대해 전방위로 질문을 했지만, 똑 부러진 답변을 듣기 어려웠다는 것. 북핵문제 보다는 당장 미군이 죽어나가는 이라크와 아프간 문제가, 한미 FTA보다는 자국의 대량 실업이 미국에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심지어 한미 FTA비준문제는 콜롬비아나 파나마 FTA보다 후순위로 밀렸다는 말도 들었다고. 그는 “가능한 것은 타결을 하고 어려운 것은 보완점을 마련해서 오바마 정부 담당자와 다시 조율을 해야 할 것 같다”며 “국회 비준 역시 오바마 정부 출범 후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전 의원은 일주일간 미국의 정치 시스템을 보고 왔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오바마 당선자를 만든 미국진보센터CAP(Center of American Progressive)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촛불집회’로 ‘정당 정치의 위기’를 맞았지만 미국은 이런 기관에서 직접 참여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CAP은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적은 연봉으로 채용합니다. 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대외문제 인종학살 문제를 연구하죠. 예산의 절반은 언론에 쓰는데, 심플한 카메라로 진보의 가치에 부합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언론사로 가져갑니다. 우리처럼 젊은이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지요. 또한 미국의 언론은 분파주의적인 이슈에 조심스럽습니다. 반면 우리는 기자도 친이 친박 기자로 나뉘는 쇼킹한 상황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를 기회주의와 부정이 득세한 역사라고 했지만 오바마와 같은 정치인들은 하나의 미국을 강조합니다. 언론 ,후보자들, 정치인, 정당들 모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시도가 폭넓게 이뤄져야 하고 그 시도는 한나라당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의원을 만난 날은 민주노동당의 난입으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시기에 대한 합의문에 서명하려던 여야 원내대표의 회동이 무산됐던 날이다. 전 의원은 “민노당 상황을 보면서 당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어려운 국민들의 입장을 생각할 때 무산시킨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는 왜 정치인들이 간단한 산수조차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없애는 일입니다. 민노당이 역사이래 감격적인 제도권 진입에 성공했는데 왜 반 토막이 났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나요?”
전 의원은 어찌 보면 ‘정치계의 스타’이다. 그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엄청난 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안티'도 많다. 진보논객 진중권 씨는 그가 글을 쓸 때마다 거의 매번 비판 글을 써 올린다. 최근에도 전 의원이 ‘지금은 경제위기지만 국가 체제가 위협을 받던 노무현 정부 때보다는 견딜 만 하다’는 글을 쓴 것이 타깃이 됐다. 그는 이런 관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까.
“진중권 씨요? 별로 저는 신경을 안 써요. 다른 분들은 진중권 씨가 제가 답해주길 원하는 것 같다고들 하시는데, 굳이 뭐. 바쁘기 때문에 굳이 찾아서 그 분의 글을 읽지 않아요. 다만 저는 대한민국 체제에 감사하고 노 정권 때 그 체제가 흔들렸기 때문에 그런 글을 썼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우리는 이겨낼 힘이 있어요. 저도 방학 때 급식을 못 받는 어린이들, 쪽방 촌 이웃들을 찾아보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걸 동네방네 소문 낼 필요도 없는 거구요.”
끝으로 전 의원에게 이번 방미로 미국 민주당 쪽에 ‘인맥’을 만드는 일에 성공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바마가 신인이라서, 미국도 마찬 가지로 오바마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미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국가니까 여러 방면에 계속 친분을 쌓으면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이어 “다만 오바마의 당선 이후 보호주의적인 색채는 확실히 농후해질 것이다. 우리 경제에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영상=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