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후배스타 나와줬으면…”
“어려운 일 많았지만 관객들 열정이 버팀목”
20년 전 대학생이었던 나는 호암아트홀의 한 구석자리에 앉아 울고 있었다. 연극 ‘화니와 마리우스’의 공연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여주인공 화니가 편지를 읽는 결말 부분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화니 역을 맡은 배우는 윤석화 씨였다. 이 작품을 통해 나이트클럽을 다니며 무절제한 청춘기를 보내던 내 속에서 순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윤석화라는 배우가 너무 고마웠다.
‘신의 아그네스’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영원한 아그네스로 남을 줄 알았던 윤 선배는 닥터 리빙스턴으로 돌아왔다. 2009년 1월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2만5000∼5만 원. 02-3672-3001
▽조재현=‘화니와 마리우스’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편지를 읽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윤석화=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부분이에요. 사랑의 절절함을 ‘마리우스’의 한마디에 담아야 했어요. 저도 할 말이 있어요. 재현 씨가 ‘에쿠우스’에 처음 출연할 때 너무 많이 본 작품이라 안 가려고 했어요. 신인이 출연한다고 해서 갔는데 ‘에쿠우스’의 알란에게 감동받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조=그때 분장실에서 안아주신 게 기억나네요. ‘신의 아그네스’에서 아그네스 역을 신인들이 맡게 됐는데 저처럼 잘됐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윤=이 공연을 계기로 ‘윤석화는 곧 아그네스’라는 전설이 사라지느냐는 말도 나오지만 젊은 배우들이 그런 인식을 깨주기 바라요. 연극계에 스타가 나올 수 있다면 기꺼이 거름이 될 겁니다.
▽조=당시 아그네스에게만 초점이 집중돼 부담이 컸죠?
▽윤=졸지에 스타가 됐는데 수녀와 리빙스턴 역을 맡은 언니들에게 미안했죠. 조금 못마땅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리빙스턴 역을 해보니 이해가 돼요. 정말 힘든 역입니다. 저라도 아그네스만 뜨면 허탈할 것 같아요.
▽조=연극계에서 ‘작년보다 관객이 없다’고 합니다. 1980년대 이후 손숙 윤소정 박정자 씨 같은 관객동원력을 가진 배우가 안 나오기 때문인 듯해요.
▽윤=그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어요. 저는 지방공연을 갈 때 보디가드를 6명을 고용했죠. 공연 후 분장실에서 2시간 뒤에 나와도 관객이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관객이 대부분 여자였다는 게 참 이상했어요.(웃음)
▽조=저도 좋아했는데요.(웃음) 그런데 그만큼 견제도 심했고 간혹 좋지 않은 소문에 휘말리기도 했죠.
▽윤=저는 연극계의 ‘안줏거리’였어요. 평론가나 연극인들을 소탈하게 만나 술도 먹고 해야 하는데 저는 공연장과 집만 다니니까 ‘거만하다’는 인상을 풍겼던 것 같아요.
▽조=그런 일을 겪으면 공연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윤=하루는 폭설이 내려 5시간 전에 공연장으로 갔는데 겨우 공연 전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산울림 소극장에서 와우교까지 관객이 우산을 쓰고 줄을 서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어떻게 공연장을 떠나겠어요.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윤석화 씨는…
△1956년 1월 16일 서울 출생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
△연극 ‘신의 아그네스’ ‘사의 찬미’ ‘딸에게 보내는 편지’, 뮤지컬 ‘명성황후’ ‘브로드웨 이 42번가’ 등 출연
△제20, 25, 32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연기상(1984·1989· 1996년) 제1회 여성동아대상 (1984년) 수상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영상취재 : 임광희 동아닷컴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