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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女有親’ 다룬 뮤지컬-드라마-소설 등 연말 잔잔한 감동

입력 | 2008-12-11 03:03:00


딸, 그 뒤의 아버지…

경제 한파에 ‘가족의 소중함’ 부각… 딸들의 객관적이고 섬세한 시선으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 끌어내

28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다섯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다. 우유 가공업자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는 혼기가 찬 딸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나서서 속이 끓는다. 그렇지만 결국엔 자식들이 제 뜻대로 살아가도록 격려해 준다. “어느덧 깊게 잡힌 아버지의 주름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빠와 멀어졌는데 뮤지컬을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는 등 작품을 계기로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됐다는 딸 관객들의 리뷰가 80%에 이른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묘사한 이야기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경기 불황의 시기에 아버지에 대한 조명은 외환위기 때 움츠러든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에게 주목했던 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최근 이어지는 문화 텍스트들은 특히 딸들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는 게 특징이다.

여성 작가 김숨 씨는 지난주 장편소설 ‘철(鐵)’을 출간했다. ‘철’은 변화하는 사회에서 부속품처럼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 마을에 들어선 조선소에 취직한 사내들이 노동에 매몰되는 과정을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며 그려냈다. 이 사내들은 물론 김 씨의 아버지 세대다. “1970, 80년대 우리나라가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일밖에 모르면서 살았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 투사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최근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도 희생과 인내를 감수하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다. 홀아비로 살면서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키워 온 아버지는 각별히 자신을 도왔던 큰딸에 대한 애정이 크다. 주인공 큰딸이 자식이 딸린 이혼남과 사랑에 빠지면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다시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가족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게 평론가 김미현 씨의 분석이다.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 가정,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 등 2000년대 이후로 기존의 가족 개념이 해체됐던 게 사실. 하지만 경제위기와 더불어 따뜻한 가족애가 강조되면서 “부성으로 대변되는 고전적인 가족 서사가 되살아났다”고 김 씨는 설명한다.

특히 최근 들어 섬세한 시선을 가진 여성을 통해, 가장으로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짐을 진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끌어내는 게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문학적 문화적 의미는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경향은 의미 있다. 커 가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딸, 자신을 돌봐주는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들과 달리 딸과 아버지는 거리감이 있었다는 것. 평론가 강유정 씨는 “남성(아들)의 경우 아버지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동시에 지나치게 동질감을 가질 수 있다”면서 “여성은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으로써 오히려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상세하면서도 감정에 얽매이지 않은 딸들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수요자로 하여금 부담스럽지 않은 공감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작가 김숨 씨는 “우리 사회의 아버지라는 존재가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거세되고 밥벌이에 급급한 어른으로 비쳤으며, 폭력을 행사하거나 지배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였다”며 “딸의 시선을 통해 아버지를 하나의 ‘인간’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