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송경용 지음/생각의 나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난을 알려주고 예수께로 인도해준 사람들, 나눔의 집을 만들고 우리 사회를 저변에서부터 지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특히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발바닥의 사제’로 이끈 이웃들
청소년, 노숙가정, 장애인 등 소외계층과 빈곤한 이웃들을 위해 빈민선교기관 ‘나눔의 집’ 사제로 일하며 20여 년간 사회복지, 빈곤계층을 위한 문화운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헌신해온 송경용 신부가 자신의 삶과 그를 이끌어 준 주변인들의 손길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이웃을 위해 발로 뛰어다닌 그의 삶에도 고민과 방황 어린 젊은 날이 있었으며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신념을 지킬 수 있게 모범이 돼 준 은사들과의 귀한 만남이 있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9년부터 서울 노원구 상계동 적십자청소년야학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송경용 신부는 일생의 사명을 찾게 된 뒤 1986년 성공회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적십자청소년야학을 경험하기 전부터 그의 주변에는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이 있었다. 노동의 가치를 몸소 느끼게 해주고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줬던 초등학교 은사, 정직한 장사가 무엇인지 보여줬던 시골 장터의 장사꾼,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가족들 몰래 룸살롱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누구보다 순박했던 이들이 그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고 배우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던 송 신부는 상계동적십자청소년학교에서 20대를 보내며 비로소 ‘나눔’의 가치를 몸소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등록금을 털어 중고교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해 주고, 공부할 시간이 없는 친구들을 위해 새벽 다섯 시부터 특별반을 운영하는 등 온몸으로 헌신하던 동료와 선배들의 열정에 감화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서 그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나눔의 집’을 꾸린 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매번 새로운 깨달음과 아픔, 감동을 전해 준다. 알코올 의존증에다 수집벽까지 있어 길가에 보이는 걸 모두 집에 들고 와 쌓아두는 남편 때문에 누군가 수시로 물건을 꺼내줘야 세 모녀가 겨우 잘 공간이 생겼던 정숙 정아 엄마. 본인도 중증 뇌성마비 여성으로 보통 사람도 살기 힘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정을 꾸려가는 그녀는 그에게 잊혀지기 힘든 사람이 됐다. 장기수들과의 만남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상, 정치 문제를 떠나 이곳에서 도움과 의지가 필요한 약한 이들을 돕겠다는 종교적 사명감을 갖게 된 비전향장기수들이 선입견과 달리 동네 아이들을 좋아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지런히 사는 평범한 동네 노인네들임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알게 됐다.
박노해 시인은 가난한 삶의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를 일컬어 ‘발바닥의 사제’라고 노래했다. 주위의 소외된 이들의 가슴 찡한 삶과 그들을 위한 송 신부의 섬김을 지지하며 영적 귀감이 돼 주는 가족, 동료들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나눔의 가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을 충분히 느끼며 살고 있는지 새삼 질문해 보게 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