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의 실체를 파헤친 보도로 유명한 언론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가장 똑똑한 엘리트들이 어떻게 전쟁의 수렁에 빠져 들어갔는지를 해부한 책의 제목을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자들(The Best and the Brightest)’로 달았다.
그는 개정판 서문에서 “아이러니(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판단을 하는 것)를 지적하려는 것이 원래 의도였으나 요즘은 그 제목이 잘못된 의미(정말로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한 내각 명단에 대해서도 여기저기에서 ‘가장 우수하고…’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베트남전을 계획했던 케네디 행정부의 주역을 살펴보자. 당시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는 예일대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으로 꼽혔고, 하버드대 최연소 학장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보좌관이었던 월트 로스토는 예일대, 매사추세츠공대 출신으로 어느 분야에서건 ‘최연소’였던 신동이었다.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화제를 낳았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최연소, 최고 연봉 교수였다.
이들이 주도했던 베트남전은 미국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오바마 당선인이 지명한 경제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가장 우수하고…’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백악관에서 경제자문역을 맡게 된 로런스 서머스는 누구나 천재성을 인정하는, 하버드대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였다. 그런데 그가 하버드대 총장직에서 쫓겨난 것은 여성과 과학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때문이라기보다는 동료를 대할 때의 고압적이고 무시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 역시 ‘빛나는 이력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력서에는 기업이나 금융계 등 현장 경험이 전무하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사람’이다. 그런데 똑똑하고 완벽에 가까운 루빈도 씨티그룹의 선임 고문으로 일하면서 씨티그룹의 위기를 사전에 짚어내지 못했다.
물론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가장 우수하고…’를 거론하며 모두가 열광하는 분위기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능력보다는 정실주의가 우선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후에 능력 중심으로 사람을 쓰는 오바마 당선인을 지켜보면서 신의 축복으로 느낄 수도 있다. 과거 오바마 당선인을 신참으로 과소평가해왔던 언론은 이런 식의 칭송으로 과잉 보상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 역시 케네디 대통령에게 호의적이던 당시 언론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당시 언론은 경험을 내세운 리처드 닉슨 대신 젊고 유능한 케네디에게 주목했으며, 그가 선택한 참모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당시 케네디가 선택한 가장 똑똑한 엘리트들이 미국 역사에서 남북전쟁 이후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베트남전을 설계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라크전 이후에 베트남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핼버스탬에 따르면 ‘똑똑한 천재’들의 상당수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에야 진짜로 현명해질 수 있었다. 서머스와 가이트너도 이번 경제 위기를 수습하면서 현명함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프랭크 리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