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대구/경북]“우리 공부방 선생님은 쇳물 삼촌”

입력 | 2008-12-12 06:40:00


■ 포철 직원들 퇴근 후 저소득층 공부방 봉사 화제

“이젠 매주 화요일이면 공부방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경북 포항제철소 제선부 기술개발팀에 근무하는 박태수(29) 씨는 화요일이면 회사 근처인 남구 해도2동에 있는 ‘사랑의 공부방’으로 간다.

이곳에서 박 씨는 중학생 15명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영남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포스코에 입사한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이 공부방의 선생님이 됐다. 그동안 중학생을 가르친 건 총 260시간.

그는 11일 “공부뿐 아니라 한 번씩 함께 목욕도 하면서 삼촌과 조카 같은 사이가 됐다”며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반듯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부서 직원 4명은 매주 화, 목요일 이곳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쇳물을 뽑아내는’ 정성으로 제철소 주변에 사는 학생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워 따로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석·박사 학위를 가진 환경에너지부 직원 12명은 해도1동에 있는 ‘무지개 공부방’에서 초중학생 30명에게 매주 3회 2시간씩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 벌써 2년째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퇴근 후에 2인 1조를 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급한 일이 생겨도 ‘휴강’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포스텍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5년 입사한 수질보전팀 양근영(36) 과장은 영어를 맡고 있다. 양 과장은 “회사일도 바쁘지만 학생들이 보고 싶어 수업이 있는 날의 저녁시간은 꼭 지키려고 한다”며 “이달 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모습에 직원들의 가족도 공부 도우미로 나서고 있다.

열연부에선 간부의 부인들이 ‘공부 봉사대’를 만들어 선생님과 엄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여름부터 청림동 공부방에서 매주 목요일 초등학생 28명을 만나고 있다.

학생들은 목요일 오후 3시면 공부방으로 달려가 자신의 공부를 지도해 주고 손을 잡아 주는 ‘엄마 선생님’을 만난다. 엄마 선생님들도 목요일 오전이면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공부방 가는 날임을 잊지 않도록 서로 확인한다.

열연부 기술개발팀 장영상 차장의 부인 김상화(46·포항시 남구 지곡동) 씨는 아이들을 만나 과제물을 점검하고 어디 불편하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핀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지금은 먼저 달려와 안길 정도로 바뀌었다.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김 씨는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내 자식을 정성껏 키우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난다”며 “아이들이 힘차게 새해를 맞을 수 있도록 연말에는 깜짝 놀랄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