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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퇴가 ‘희퇴’로, 단기서 장기로

입력 | 2008-12-15 03:01:00


금융계 인력 구조조정 1998년 - 2008년 달라진 풍경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도 금융권을 시작으로 인원 감축을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도 국내 기업들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러나 최근의 희망퇴직 풍경은 10년 전과 사뭇 다르다. 외환위기 때는 여러 기업이 동시에 무너지면서 빠른 시일에 대규모 인원 감축이 이뤄졌지만 최근엔 과거보다 천천히 진행되는 분위기다.》

단기간 대규모 감축보다 조금씩 천천히 줄여

급여 34개월치까지 위로금… 후유증 최소화

‘자영업 실패’ 목격한 40대들 선뜻 신청 없어

○ 천천히 진행되는 희망퇴직

조기퇴직을 뜻하는 용어로 과거엔 명예퇴직이 널리 쓰였지만 이미지가 좋지 않아 요즘엔 ‘희망퇴직’이란 말이 쓰인다. 기업에 따라 희망퇴직, 조기퇴직, 특별퇴직, 선택정년제 등 다양한 용어로 쓰이는데 모두 같은 의미다.

최근의 희망퇴직은 바뀐 용어답게 최대한 근로자의 선택을 배려해 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물론 일부 기업에서는 퇴직후보군 명단을 정해 놓고, 권고퇴직을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보다 많은 퇴직위로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발적인 희망퇴직 신청률을 높이는 기업이 더 많다.

올해 193명을 희망퇴직시킨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원하지도 않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자르는 분위기는 거의 없다”며 “유학, 사업 등 하고 싶은 일을 정한 뒤 신청한 직원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엔 워낙 단기적 충격이 커 기업들이 당장 인원을 감축하지 않으면 부도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기업들은 1∼2년 새 집중적으로 많은 인원을 감원했다. 일반은행 직원 수는 1997년 말 11만3493명에서 1998년 말 7만5332명으로 1년 새 33.6%나 줄어들었다.

짧은 시간 내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감축하다 보니 인력 감축으로 인한 업무공백이 생긴 게 후유증으로 지적됐다. 이후 노사가 협의해 신청자를 받아 퇴직시키는 희망퇴직 제도를 매년 실시하는 기업이 늘어나 과거와 같은 집중적, 대규모 인원 감축보다는 소규모 인원 감축을 수시로 시행해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다.

조우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에는 기업들이 짧은 시간 내에 대거 퇴직하는 감원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희망퇴직을 실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도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퇴직 조건은 좋아졌지만 신청 꺼려

기업들은 희망퇴직 신청률을 높이기 위해 과거보다 신청 대상을 넓히고, 퇴직위로금 조건을 좋게 내걸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1998년 명예퇴직 당시엔 월평균 급여 6개월 치에 보조금 800만 원을 줬지만 올해는 근속 기간에 따라 6개월에서 최대 20개월까지 지급했다. SC제일은행도 1998년 제일은행 명예퇴직 당시엔 월평균 급여 9개월 치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줬지만 이번엔 최고 34개월까지 지급했다.

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위원은 “그러나 외환위기 때 조기퇴직한 후 자영업으로 뛰어든 동료들이 줄줄이 실패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40대 이상 직장인들은 희망퇴직에 선뜻 응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퇴직을 원하는 40대 이상 책임자급보다는 30대 사원들이 유학이나 이직을 위해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