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엔 좌완 투수, 혹은 비슷한 스타일의 우완 투수를 연속해서 선발로 내세우지 말라는 말이 있고, 국내 야구엔 좌타자 혹은 우타자를 연속해서 배치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워낙 많은 팀, 무수히 많은 선수들이 있는 메이저리그의 경우 국내나 일본 야구처럼 철저한 데이터 분석이 불가능하기에 타자들이 상대 투수의 공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끌어가는데, 아무래도 같은 투수가 연달아 나오다보면 그 만큼 반응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게 됐고, 국내야구는 원 포인트 릴리프 형태의 투수 교체가 많아 좌타자 혹은 우타자가 연속돼 나오면 그 만큼 상대 팀의 투수 운용이 편해지기 때문에 이런 정설 아닌 정설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라인업이라면 좌-우-좌-우의 징검다리 타순 이론쯤은 쓰레기통에 집어 내버려도 될 것 같다.
한화 이글스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덕 클락을 내보내고 새로운 용병 빅터 디아즈를 영입했다. 과거 한화가 보여줬던 김태균-이범호-김태완(혹은 이도형)의 타순이 극단적으로 오른손 편중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데이비스, 크루즈, 클락 등 좌타자 용병을 기용했던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우투우타 디아즈의 영입으로 한화의 중심타선은 모두 오른손 거포로 이어지게 됐다.
군 입대에 따라 또 다른 좌타자인 한상훈을 대신해 오른손의 송광민, 혹은 이여상이 주전 2루를 맡을 것이 유력한 한화의 내년 시즌 타순은 추승우-송광민(이여상)의 테이블 세터에, 디아즈-김태균-이범호-김태완이 중심타순을 이루고, 이영우-신경현-김민재로 이어지는 하위타순이 짜일 가능성이 높다. 9명의 타자 중 무려 7명이 우타자, 2번부터 김태완의 6번까지가 모두 우타자 일색인 한화 타순은 징검다리 이론과는 정 반대의 얼굴을 나타내게 됐다. 좌타자 중 주전 급 백업 요원인 연경흠, 윤재국, 강동우도 결국은 2명의 주전 좌타자 추승우와 이영우를 대신해서나 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한화의 왼쪽 배터박스 선이 오른쪽 배터박스 선보다 빨리 지워질 가능성은 없다.
아직 뚜껑도 채 열어보지 않은 디아즈의 활약 여부는 전혀 검증된 바가 없지만, 한화의 용병 선수 뽑기 달인들의 능력은 과거 게리 레스의 추천서나 구 현대 스카우터들의 알짜배기 아마추어 선수 찾아내기 신공보다 더 인정받고 있기에 디아즈 역시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이번 윈터리그에서 맹일 장타 레이스를 펼쳐 또 한 명의 코리안 드림을 실현시킬 거물급 용병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로 한화의 내년 시즌 예상은 다소 비관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전반기를 2위와 승패 없는 3위로 마쳤던 한화는 내심 플레이오프 직행까지 바라며 올림픽 휴식기를 맞았지만, 시즌이 최종적으로 끝난 후 그들의 순위는 예상 밖의 5위였다. 클락의 부진과 불펜 투수진의 부상 레이스 등 원인은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마운드의 세대교체에 실패한 듯한 인상을 심어줘 앞으로 류현진 이외의 선발 필승카드가 2~3명 더 생길 때까지는 어려운 시즌을 보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결국 그들은 클락을 내치고 디아즈를 받아왔다. 발은 느려지고 수비력은 떨어지겠지만, 또 투수력은 여전히 의문부호가 찍히겠지만,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인 거포 이미지를 더욱 더 부각시키면서 단점 보강보다는 장점의 극대화로 어려움을 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허점은 많은 팀이지만 디아즈가 기대대로 터져주고, 김태균과 이범호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꾸준함에 ‘FA로이드’까지 폭발한다면 한화라는 팀은 결국 마운드에서 류현진과 토마스, 두 명의 선수만 가지고도 충분히 상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마정길, 안영명 같은 불쌍한 처지에 놓일 투수들은 내년에도 등장하겠지만 일단 그런 이야기는 다음번으로 미루자.
오른손 투수가 우타자에게 강하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아마 한화가 들고 나오게 될 이런 오른손 타자 일색의 라인업을 반길 우투수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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