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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하이라이트]‘궤변개그’로 인기몰이 박영진

입력 | 2008-12-16 02:59:00


“그건 당신 생각이고∼ 화장실 갔다가 손 안 씻으면 물을 아낄 수 있잖아!”

KBS2 ‘개그 콘서트’(일요일 오후 9시 5분)의 ‘봉숭아 학당’ 코너에서 교사 역으로 4주째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는 개그맨 박영진(27·사진). 그는 또 다른 코너 ‘박 대 박’에서는 궤변을 늘어놓는 피의자 역으로 활약 중이다.

“김 회장한테 돈 받았지? 김 회장은 너를 안다던데 넌 왜 김 회장을 몰라!”라며 추궁하는 형사 역의 동료 개그맨 박성광에게 “너 오바마 알지? 오바마는 왜 너를 몰라? 오바마한테 돈 받은 거 아냐?”라며 면박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늘 형사의 취조에서 벗어난다.

캐릭터, 분장, 몸 개그가 넘쳐나는 스탠딩 코미디에서 ‘궤변 개그’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를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현실도 논리적이지만은 않잖아요.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시속 100km 안팎이지만 자동차는 250km 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잖아요. 과속 과태료를 받으려고 규제를 피하는 게 아닐까요?”

그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 감시하는 기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리가 생긴다는 전제하에 만드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제 궤변보다 말이 안 되는 현실이 많아요. 등록금하고 실업률은 높은데, 아이 많이 낳으라고 그러고…. 그런 현실도 ‘지금까지 개그였습니다∼’ 하고 끝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뿔테안경 너머 진지한 그의 눈에서 ‘춘배야’에서 선보인 4차원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도 잘 우기는 성격이라는 그는 인터넷 유머, 화장실 벽에 써 있는 낙서를 참고해 개그를 짠다고 말했다.

“상대역 박성광이 체구도 왜소하고 힘없는 약자 이미지잖아요. 목소리도 크고 나쁜 놈인 제가 말도 안 되는 말로 우겨서 혐의에서 빠져 나가는 거죠.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세태를 풍자하는 측면도 있고요.”

스무 살 동아방송대 재학시절부터 개그맨 시험을 계속 쳐 스물여섯 살에 합격한 그의 미니홈피 제목은 ‘키호티즘(Quixotism)’. ‘돈키호테’의 행동에서 나온 말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무모하게 돌진한다.

그는 “스타가 돼야겠다는 강박이나 빨리 뭔가 터뜨려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다”며 “그래도 ‘나는 웃긴다’는 자신감을 갖고 십년 이십년 넘어서도 꾸준히 웃기는 선배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