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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의 법과 사회]역사교과서, 좌우 편향 모두 안된다

입력 | 2008-12-16 02:59:00


진보 정부 10년을 거친 후 보수 정부가 새로운 틀을 짜는 과정에서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이 뜨겁다. 학생의 교과용 도서가 안타깝게도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의 현장으로 변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의 초중등교육은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의 제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를 미화하는 정권의 도구가 교과서였다. 민주화 이후에도 매한가지다. 지난 10년 사이 어느새 교과서는 진보 이론으로 덧칠돼 있다.

교과서 논의의 기저에는 한국사회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현저하게 녹아들어 있다. 건국과 산업화세력은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강조한다. 도가 지나쳐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려까지 한다.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긍정으로 일관한다. 그들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는 옥동자를 출산하기 위한 진통쯤으로 여긴다.

반면에 민주화세력은 한반도의 북쪽에 자리 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내팽개친 남쪽만의 일방적인 건국 그 자체의 정통성에 의구심을 드러낸다. 이승만의 독자적 건국을 폄하하고 친일세력을 등용한 역사적 과오의 청산을 주장한다. 박정희의 산업화 성취보다는 그가 뿌려 놓은 권위주의적인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앞선다.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한 부정의 역사를 긍정의 역사로 치환하기란 불가능하다. 건국 60주년에 즈음하여 드러난 건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교정돼야 한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쪽만의 단독 정부 구성이 아쉽기는 해도 그렇다고 북쪽을 옹호할 만한 어떠한 명분도 없다.

하지만 건국 60년의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건국과 산업화의 성취에만 매몰돼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의 횃불을 든 4·19혁명을 데모쯤으로 폄하하는 역사의식을 갖는 한 교과서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는 열리지 않는다.

한 시대의 역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오버랩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을 풍미한 교과서는 지나치게 과거의 부정에 매몰돼 있다. 반면에 대안교과서는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는 데 치중한다. 그래 가지고는 어느 한 쪽도 공동체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한 쪽으로만 경도된 역사관을 가지고는 자라나는 학생을 위한 객관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승적이고 통합적인 저술이 필요하다.

교과서 저자에게 역사관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과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기초한 대학교수의 학술 연구서가 아니라 성장과정에 있는 학생을 위한 교육용 교재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도 대학교수의 강학(講學)의 자유는 학문의 자유로 보호받지만 초중등 교사의 수업의 자유는 교육의 자유로서 보장받을 뿐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한다.

특정 이념에 천착한 일방적인 교육은 청소년의 역사인식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는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기술해야 한다. 부정을 긍정으로 미화해서도 안 되겠지만 긍정을 부정으로 매도하는 자학적 행태도 안 된다. 역사적 사실(史實)을 균형감각 있게 전달하는 일이 교과서 집필자의 사명이다. 사실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어린 학생을 상대로 한 그들만의 파이 키우기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내치는 편협한 역사관을 갖고는 어느 쪽도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 건국과 산업화, 인권과 민주주의는 대한민국 60년이 쌓아 올린 위대한 금자탑이다. 지금은 그 금자탑을 보듬어 안고 미래를 설계할 때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