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확대경제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어려운 때일수록 제일 밑바닥의 서민들이 가장 어렵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을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먹고 입는 기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불행한 일을 겪는 절대 빈곤층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열흘 전인 4일 새벽 이 대통령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좌판에서 시래기를 파는 박부자 할머니가 대통령의 팔에 매달려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 2만 원도 안 되는 벌이를 위해 새벽부터 떨고 서 있는 박부자 할머니에게 세상은 늘 춥고 고달팠을 것이다. 지금 어려운 사람이 어디 박부자 할머니뿐이겠는가.
전쟁-재해에 준하는 비상시국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금 지구촌의 경제 한파로 번졌다. 고환율과 주가 추락으로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여 있다. 근로자는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며 다가올 구조조정의 위협 속에 떨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실업자가 26년 만에 400만 명을 넘어섰고 매년 25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어 어려운 상황이 꽤 오래갈지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한마디로 경제는 앞이 안 보이고 서민은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못지않은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경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의 카드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어려운 처지의 이들을 도와줄 대책이 긴급하다. 우리나라는 사회보험의 역사가 짧고 내실이 부족하여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가 없다. 노후 생계를 보장받기에는 국민연금의 급여액이 너무 적고, 실업상태에서 고용보험을 못 받는 이들도 많다.
경기침체가 오래가면 갈수록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드는 이가 많이 생기게 된다. 그중에서 영세자영업자, 노점상, 일용근로자처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이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을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으로 이들이 갑작스러운 빈곤상태에 빠진다는 데 있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이들은 있는 것이지만 그 규모가 커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비상상황에서는 빈곤층을 긴급 지원하는 비상안전망이 필요하다. 전쟁이나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 예산이 평상시와 다르게 편성된다.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일시적 현상이니까 곧 정상을 되찾을 것 같다고 보면 그냥 평상시처럼 가도 된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긴급지원은 긴급하게 이뤄져야 정석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빈곤의 골이 깊어지고 사회적 불안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닥친 후에 대형 실업과 소득 감소로 새로운 빈곤층이 등장했다. 이때 정부는 근로능력이 없는 이에게는 한시적으로 생계를 지원했고, 근로능력이 있는 이에게는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생활고를 덜어줬다. 일시적인 빈곤층을 위한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있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을 조금 보완하는 형태로 운영해 온 것이 사실이다.
최저생활은 꾸려갈 수 있도록
대형 실업과 대형 빈곤을 사전에 방지하고 사후에도 잘 대처하려면 큰 틀의 빈곤대책이 필요하다. 소득을 지원하여 최저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올데갈데없어진 이들에게는 주거공간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어려운 이들의 처지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빈곤 문제는 어느 한 부처의 소관도 아니고 정부의 행정조치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모든 부처가 같이 고민해야 하고, 정부와 시장이 같이 가야 한다. 바야흐로 비상시국에 맞는 사회안전망을 가동해야 할 때이다. 성공적인 사회안전망은 바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다.
문창진 포천중문의대 보건복지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