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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정훈]예결위 상설화보다 더 중요한 건 전문성

입력 | 2008-12-16 02:59:00


내년도 예산안이 부실심사 논란 끝에 13일 강행처리된 이후 정치권에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은 15일 “해마다 되풀이되는 졸속, 파행 예산 심사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별도 기구를 당내에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야당과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화’ 주장에 대해 그는 “한나라당도 야당 시절 같은 주장을 하지 않았느냐”고 상기시켰다.

야당들도 한목소리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심사와 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예결위를 상임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예결위의 심의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가세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정치권이 예산 심사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예결위를 상임위로 바꾸고 심사 기간을 며칠 더 늘린다고 예산 심사가 충실해질 것 같지는 않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아무리 시간을 더 줘도 지금처럼 해서는 심사가 제대로 안 된다”고 한 말은 국회 예산심사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가늠케 한다.

예결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위원들은 의원들의 비(非)전문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위원은 “의원들이 1년씩 돌아가면서 예결위를 맡아 자신과 동료의원의 지역구 사업이나 챙겨서는 부실심사 관행을 영원히 뿌리 뽑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사업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백억 원을 “늘려라”, “깎아라” 주문하는 것은 심사가 아니라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 전문위원은 “자기 집 살림 같으면 그렇게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장인 심지연 경남대 교수는 “정부의 예산안 국회 제출시기를 현행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 2일)에서 적어도 120일 전으로 앞당겨 심사기일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효율적 심사를 위해 예결위원 수를 현재 50명에서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은 이번에도 여야가 당장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대안’ 운운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몰라서 못 고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그들의 오랜 모습을 보며 체념할 수도 있다. 정치권이 진심으로 ‘부실심사’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면 이제는 하나씩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더는 국회의 ‘거짓 성찰’에 속지 않을 것이다.

박정훈 정치부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