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가 한반도를 강타한 2002년 6월 당시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 최대어로 꼽힌 서장훈(34)이 SK에서 삼성으로 옮겼다. 삼성은 서장훈의 영입으로 당장 우승이라도 할 것 같았지만 4년이나 걸려 2006년 정상에 올랐다. ‘국보급 센터’라는 서장훈이 가세하긴 했어도 새로운 팀에 녹아들어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그만큼 세월이 필요했다.
강한 개성으로 감독,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애를 먹는 서장훈은 지난해 삼성을 떠나 KCC 유니폼을 입게 된 뒤 입단 소감으로 “대학 신입생이 된 것 같다”고 설레는 심정을 드러냈다. KCC와 4년을 계약했기에 마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 졸업 때까지 후회 없이 뛰고 싶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올 시즌 서장훈은 이런 각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출전 시간이 줄어든 데 따른 불만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가 하면 벤치에서도 턱을 괴거나 팔짱을 낀 채 방관자처럼 경기를 지켜볼 때가 많다. 모비스에 시즌 3전패를 당한 14일 경기를 앞두고는 한 농구 관계자에게 “오늘 무지 웃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스타팅 라인업에 빠지게 된 걸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KCC는 초대형 신인 하승진까지 가세해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최근 4연패에 빠져 9승 10패로 6위로 떨어졌다.
이런 침체에 다양한 진단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KCC는 외부의 질타를 의식하기에 앞서 구성원 간의 신뢰 회복이 시급해 보인다. 30대 중반의 고참이 된 서장훈은 ‘내가 몇 분 이상을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팀이 살아야 나도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보는 게 어떨까. 자신을 낮춘다면 더 큰 박수가 돌아갈 수도 있다.
프로야구 명장 김인식 한화 감독은 평소 “출전 기회가 줄어든 더그아웃의 고참 선수를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허재 KCC 감독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대화가 필요해’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KCC 역시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아닐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