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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내공’으로 우직하게 견딘 만화인생 40년 이두호 씨

입력 | 2008-12-17 03:03:00


“엉덩이는 펜보다 강하다”

《“강의 첫 시간에 매번 물어봅니다. 만화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전 엉덩이로 그린다고 얘기해줘요. 만화에 평생을 걸었으면 그만큼 우직하게 밀어붙여야죠. 저요? 엉덩이에 곰팡이는 안 폈지만 땀띠는 나봤어요.(웃음) 졸업할 때가 되면 학생들도 ‘엉덩이로 만화를 그려라’는 말이 뇌리에 남는다고 하더군요.” ‘머털도사’ ‘임꺽정’ ‘객주’ 등을 그린 만화가 이두호(65) 씨에게 올해는 뜻 깊은 해다. 1968년 박기정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린 지 40주년이다.》

○ 세종대 만화애니과 교수 정년 퇴임

그는 9일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에서 물러나는 정년퇴임식을 했다. 8월 말로 정년퇴임했지만, 같은 대학에 재직 중인 이현세 교수를 비롯한 후배 만화가와 제자들이 퇴임식을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이현세 교수는 퇴임식 준비위원장을 자처했다.

9일 세종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이 씨는 연방 “(정년퇴임식이) 남세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후배 만화가, 학교 직원, 제자들이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 교수는 1년 동안 한 과목의 강의를 맡을 계획이다.

“학생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게 더 많습디다. 순발력부터 창의력, 컴퓨터를 다루는 법은 학생들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강단에서 자주 하는 얘기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아는 게 있다면 모를 때 물어본다는 것이다’거든요. 이를 빌미로 학생들에게 배웠죠.”

○‘머털도사’ ‘객주’ 등 연필-펜으로 손작업

그는 1965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중퇴했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군대 소집영장을 받고 쾌재를 부를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고졸 학력이어서 1999년 교수로 임명되기까지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학벌이 필요 없는 만화가이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7월 출간된 ‘이두호의 가라사대’에 이어 요즘은 ‘이두호의 한국사’(가제)를 그리고 있다. 현재 먹선을 입히고 컬러작업을 하고 있다. 컴퓨터로 색을 입히는 일부 작업을 제외하면 그는 여전히 연필과 펜으로 그리는 손작업을 고수한다.

“요즘은 만화가 지면이 아닌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세상입니다. 재능 있는 누구든 컴퓨터만 있으면 만화가가 될 수 있죠. 그러다보니 스토리 구조에 비해 그림이 약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생깁니다. 솔직히 전 컴퓨터가 싫어요. 그렇지만 젊은 세대는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 씨는 “애니메이션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머털도사’의 캐릭터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처음 만화였던 ‘머털도사’가 애니메이션으로 나왔을 때 감독에게 서운하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니 너무 하나의 매체만 고집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이젠 현대사 돌파해온 내 삶 그리고파”

그는 1969년 소년중앙에 ‘투명인간’을 연재하며 데뷔했다. 그는 “어릴 적 6·25전쟁 때 모친의 등에 업혀 바라봤던 피란민 행렬이 늘 머릿속에 남아 있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 전쟁, 중학교 때 4·19, 고등학교 때 5·16, 대학교 때 한일협정을 겪는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대변하는 내 인생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욕심이 없는 그림입니다. 왜 득도한 사람들을 보면 과연 그 경지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잖아요. 그림을 통해 득도의 경지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자꾸 욕심이 생기니까. 난 아무래도 틀렸나 봐요, 허허.”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