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코리아 출신에 하버드 대학생.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여 선망의 대상이 됐던 금나나(25)씨가 4년간의 하버드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왔다.
최근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김영사)를 펴내기도 한 금 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하버드 4년을 통해 최고와 최악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말한 '최악'은 뭘까.
금 씨의 출발은 화려했다. 경북대 의예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됐으며 2년 뒤 미국 MIT와 하버드 대학에 동시 합격했다.
금 씨는 하버드대 1학년 시절 올 A를 받아 성적 상위 10%에 이내 모범생에게 주는 디튜어 상(Detur Prize)과 존 하버드 장학금을 수상할 정도로 우수 학생이었다. 생물학을 전공했고 프리메드 (Pre-med¤ 메디컬스쿨에 입학하기 위한 과정) 코스를 성공적으로 이수하며 줄곧 의사의 꿈을 키워왔다.
졸업을 앞두고 금 씨는 미국 26개 메디컬 스쿨에 원서를 냈다.
"저에게 하버드 입학이 기적이었던 것처럼 '노력'이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했어요. 꼬박 30일 동안 기숙사에 갇혀 26개의 의과대학원이 요청한 70여 개의 에세이를 썼어요. 그러나 제게 면접의 기회를 준 것은 단 5곳. 그런데 이것마저도 인터뷰 이후 불합격 통지서가 날아왔고 결국 5개 의과대학원 모두 저를 거절하더군요."
결국 26개 메디컬 스쿨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의대 입학이 쉽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확률이 0%가 아니니까, 누군가는 합격할 테니까" 용기를 내어 도전했던 것이지만 금 씨는 도전이 모두 실패한 직후 "죽고 싶을 정도의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의과대학은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국제 학생들에게 입학의 문이 좁기로 유명하다.
홍영권 미국 남가주대(USC) 의대교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 전체 의대 지원자 중 외국인 지원자는 약 2%, 합격자는 전체 합격자의 0.52%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2000년대 이후 미국 내에서도 의과대 인기가 치솟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에 대한 의과대의 문호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고 한다.
금 씨는 실패의 지점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내년 가을 미국 컬럼비아 대학 영양학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
"대학 3학년 때 영양학 관련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 미국에서 트랜스 지방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당시 뉴욕시 당국은 과감하게 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트랜스 지방을 금지하더군요. 예방의학적인 관점에서 획기적인 조처라고 생각을 했고 이 같은 일을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영양학적 관점에서 다룰 수 있고, 그것이 병의 발생빈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새로운 관점에서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거죠."
책을 통해 금 씨의 미국 의대 진학 실패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누리꾼들은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미국 대학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찾아간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책에는 그 나이 또래 여학생이면 으레 할 법한 연애 이야기가 전혀 없다. 일부러 안 쓴 거냐고 묻자 금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진리 아닐까요?"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