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5개국에 생산·판매법인 또는 지사를 둔 LG화학은 해외 주요 직책의 70%를 현지 인력으로 채용했습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BBQ로 잘 알려진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 제너시스는 해외 55개국에 35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입니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과 윤홍근 제너시스 회장은 이런 점이 인정돼 올해 한국국제경영학회가 주는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상’을 받았습니다.
최근 미국 달러화 등 외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크게 떨어진 데다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수입제품을 한국시장에 판매하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LG화학이나 제너시스가 해외시장에서 했던 것처럼 본사와 협력해 한국 소비자를 위한 ‘현지화’ 전략을 펼치는 것도 활로(活路)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례는 이미 여럿 있습니다. 디너웨어 ‘코렐’을 생산하는 월드키친은 올해 한국시장에 ‘링크’라는 패턴의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접시 가장자리를 빙 둘러싼 이 문양은 한국의 전통 놀이 강강술래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입니다. 코렐은 또 엉겅퀴, 쓴풀 등 한국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를 디자인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부터 한국 디자이너가 주축이 돼 작업한 ‘코렐 아시아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나온 제품들입니다.
미국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는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우먼 시킹 토너’를 개발해 얼마 전 출시했습니다. 보습, 활력, 유연성 등 3가지 기능을 한 제품에 담은 이 로션은 바쁜 한국의 직장 여성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일본 제품인 ‘닌텐도DS’는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작업한 끝에 자연스러운 한글을 구현하게 됐습니다. 이 게임기가 ‘국민 게임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국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입니다.
팥빙수를 본뜬 스타벅스의 ‘팥 프라푸치노’나 던킨도너츠의 ‘찹쌀 도너츠’도 한국 현지화 전략의 소산입니다.
글로벌 기업이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는 현실에서 기업의 국적은 더는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는 국적이 존재합니다. 단순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엄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