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일곱 살 소녀가 고열과 허벅지 통증으로 입원했다. 의사들은 박테리아 감염으로 진단하고 바로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약이 듣지 않았다. 평소 건강하던 이 소녀는 폐렴까지 겹쳐 고생하다 5주 후 끝내 숨졌다. 의사들은 이 소녀에게서 ‘슈퍼버그’라 불리는 메티실린 내성(耐性) 황색포도상구균(MRSA)을 검출했다. 2006년 미국 내 MRSA 감염자는 9만4000명으로 이 중 1만9000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에이즈 사망자(1만7000명)보다 많다.
▷MRSA는 반코마이신이라는 강력한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도 있다. MRSA의 사촌쯤 되는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VRSA)이 그것이다. 이처럼 박테리아와 항생제는 물고 물리는 관계다. 페니실린이란 항생제가 처음 개발됐을 때 인류를 위협하던 전염병은 정복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박테리아는 항생제의 약점을 찾아 내성을 키웠다. 마침내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항생물질에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에도 항생제를 많이 쓰기로 유명한 나라다. 비교적 잘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항생제 사용률 1위’ 기록을 수년째 보유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감기의 항생제 처방률은 57%다. 2002년 74%였으나 의약분업과 항생제 과다사용병원 명단 공개로 2006년 54.1%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늘고 있다. 특히 어린이 감기의 항생제 처방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어린이 항생제 오남용을 경고하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5세 미만의 아동은 1년 평균 10회 감기에 걸리지만 이 중 80∼90%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바이러스성 감기라고 한다. 혼동하기 쉽지만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와 유전자 및 그 껍데기로만 이뤄진 바이러스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바이러스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 감기 대부분이 바이러스성이라면 항생제를 쓸 이유가 거의 없다. 항생제를 남용하다 감기 대신 아이의 건강을 잡을까 걱정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