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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5년 서울대 사회학과 사은회

입력 | 2008-12-19 03:00:00


“이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여러분의 친구들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뒷날에라도 그들 학생이 여러분처럼 빛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서울대 사회학과 김채윤 교수)

1985년 12월 19일 오후 1시 관악산 기슭의 서울대 교수회관 제3회의실.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예정자들이 조촐한 사은(師恩)회를 마련했다. 4년 전 입학 때 50명이었던 신입생 가운데 19명만 참석했다. 졸업예정자는 29명 중 19명만 나왔고 사회학과 교수 8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사은회 행사라면 당연히 즐겁고 유쾌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분위기는 시종 착 가라 앉아 있었고 다소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이해엔 학생시위가 유난히 많았다. 반정부 데모가 격렬해지면서 캠퍼스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학교 밖에서도 점거와 농성이 잇따랐다. ‘격렬 시위’ ‘구속’ ‘제적’과 같은 험악한 용어들이 1985년의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던 때였다.

사회학과 4학년생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김민석(당시 21세) 씨와 후임 총학생회장 김용철(22) 씨, 그리고 총여학생회장 김진순(22) 씨는 구속돼 사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들은 교내 시위나 민정당중앙정치연수원 농성 사건으로 재소자의 신분이었다.

휴학을 하거나 군에 입대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간단한 점심 식사에 맥주가 곁들여진 이 자리에서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졸업소감’을 밝혔다.

“저는 졸업하고 바로 군에 갑니다. 제대 후에는 큰 회사 취직시험을 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의 길을 걷겠습니다. 가르쳐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취직시험에서 P제철에 합격했습니다. 연수 때 받는 3개월 치 월급을 모아 와서 선생님들께 술을 대접하겠습니다.”

“저는 일할 자리를 아직 찾지 못해 정처 없이 사회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한 여학생은 어려웠던 4년을 되돌아보면서 소감을 얘기하다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당시 대학 신입생의 필독서였던 ‘민중과 지식인’의 저자인 한완상 교수의 답사다.

“졸업 후에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져 가겠지만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 몫까지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

이날 사은회는 여흥도 없이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23년이 지난 지금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당시의 학생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 ‘잿빛’의 대학생활을 했던 이들에겐 사은회도 즐길 여유조차 없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