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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이상형의 신부’ 알고보니…

입력 | 2008-12-20 02:58:00



국민적 인기와 지지를 한 몸에 받아 스타덤에 오른 운동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격자로 존경받았고 재력가였으며 또한 미혼남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미혼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선수가 어느 날 텔레비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회자는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기습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은 그가 바라는 이상형의 여성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우윳빛 피부와 빛나는 짙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을 것. 머리카락은 길고 쌍꺼풀과 보조개가 있어야 하며 코는 아담하되 검은 눈을 가져야 할 것. 적당히 두툼한 입술이어야 하며 얼굴은 V라인일 것. 신체조건은 32-23-33의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을 것. 그리고 약간의 코맹맹이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자는 그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자면 ‘맞춤 생산’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일이란 대개는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신은 운동선수의 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꼬박 2년이 지난 어느 날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에서 그가 바라던 이상형의 여성이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운동선수는 눈부신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곧장 달려가 그 여성에게 청혼하였습니다. 그녀 역시 반려자를 찾고 있었다는 듯이 흔쾌히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하늘나라에서 이승의 세계로 내려온 선녀라고. 그처럼 빼어난 용모라면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담했지만 화려한 호텔에 짐을 내려놓은 신랑은 즉시 침대로 달려가 열정적인 키스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격렬한 애무에 열중해 있던 그녀는 갑자기 남편을 뿌리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놀란 남편의 질문에 그녀가 황급히 대답했습니다. 이제 건전지가 다 닳았기 때문에 갈아 끼우러 지정된 연구소로 가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평소보다 몇백 배나 되는 건전지를 소모해버려 자신은 이제 더는 여성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 허공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날이 갈수록 많은 것을 바라는 우리에게도 조만간 그처럼 눈물겨운 불상사가 닥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