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 컬처/데이비드 캘러헌 지음·강미경 옮김/419쪽·1만8000원·서돌
거짓과 편법 판치는 美사회 파헤쳐… “극심한 경쟁과 성과주의 탓” 진단
2001년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WTC) 근처 뉴욕시신용조합본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전산망이 고장났다. 통장 잔액보다 많은 돈을 인출해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고 4000여 명의 조합원이 잔액보다 많은 돈을 빼내갔다.
2002년 봄 뉴욕 주 검찰총장 엘리엇 스피처는 투자사기 소송과 관련해 투자은행 메릴린치를 조사했다. 그 결과 애널리스트인 헨리 블로짓이 회사와 결탁해 스스로 ‘쓰레기’라고 혹평한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적극 권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투자 유치 대가로 약 2000만 달러를 챙겼다.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데모스(Demos)의 수석 연구원인 저자는 정부 보고서 등 여러 자료와 속임수에 연루된 각계각층의 인물 80여 명을 인터뷰해 미국 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편법의 문화를 파헤치며 원인을 분석한다.
저자는 속임수가 횡행하는 것은 급격한 경쟁압력과 성과주의 탓이라고 지적한다. 1980년대 상장 회사에 대한 월가(街)의 영향력이 커지자 경영자들은 분기별로 발표하는 단기 수익률에 매달리게 됐다. 성과 중심으로 회사 체계를 개편한 대형 유통업체 시어스의 자동차 정비소 체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비자 신뢰의 대명사였던 시어스는 회사 체계를 개편한 뒤 1990년대와 2000년대 잇단 소송을 당해 20억 달러가 넘는 벌금과 합의금을 지급했다. 영업이익이 낮을 경우 임금 삭감과 실직 위기에 처하게 된 수리공들이 비용을 과다 청구했던 것.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느슨한 처벌도 속임수가 활개 치는 원인이다.
사기조사전문가협회(ACFE)가 회원 2만8000여 명을 상대로 2002년 조사한 결과 기업체 직권남용 사건의 25%는 수사당국에 신고조차 되지 않았고, 돈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벌인 회사는 19%에 불과했다. 법률개혁단체(HALT)의 같은 해 조사에 따르면 법률가협회가 법률남용 혐의로 변호사를 제재한 비율은 3%에 그쳤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소송을 당해도 처벌수위가 낮았다. 검찰의 메릴린치 수사로 감옥에 간 사람은 없었다.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기며 2000만 달러를 챙긴 블로짓은 4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뱉어냈을 뿐이다.
저자는 인생이라는 경주의 출발선인 학교에서부터 속임수가 판치는 것을 개탄한다. 맨해튼의 명문 사립학교와 뉴욕시의 명문 공립학교를 막론하고 커닝이 성행한다. 조지프슨윤리연구소가 미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년도 시험에서 한 차례 이상 부정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학생은 1992년 61%에서 2002년 74%로 증가했다. 럿거스대 교수이자 학업정직성센터 설립자인 도널드 매케이브가 대학 수십 곳을 조사해 2001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대학생 4명 중 3명이 커닝과 논문 표절 등 속임수를 쓰고 있었다.
‘학습장애 판정’은 더욱 가관이다. 미국은 의사로부터 ‘학습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학생의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때 일반 학생의 2배의 시험시간을 허용한다. 문제는 돈을 주고 진단서를 사는 학부모가 많다는 것이다. 1969년 학습장애를 공식 인정한 뒤 미국 전 학군에서 1970년 100만 명이었던 학습장애 학생은 1990년대 중반 2330만 명으로 늘었다.
저자는 속임수 문화와 맞서기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화하고 청년층의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쟁과 성과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국세청과 증권거래위원회, 사법기관의 권한을 강화해 금융사기 등 화이트칼라 범죄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너지 기업 엔론과 통신업체 월드컴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2004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다. 원제 ‘The Cheating Culture’.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