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크리스마스를 5일 앞둔 밤. 필리핀 마닐라 남쪽 150km 해상을 지나가는 여객선 ‘도나파즈’ 안은 고요했다.
다음 날 새벽 마닐라에 내려야 하는 승객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선장이 지휘하는 방인 선교에는 선원 한 명만이 남아 계기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장은 다른 선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머지 선원들도 선실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파도는 높았지만 날씨는 맑아 항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마닐라 도착을 5시간 30분 남겨둔 오후 10시 반 도나파즈의 평화는 끔직한 재앙으로 바뀌었다.
8800배럴의 가솔린을 싣고 가던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한 것. 충돌 직후 벡터호의 가솔린에 붙은 불은 곧바로 도나파즈로 옮겨 붙었다.
충돌에 따른 폭발음과 연기에 눈을 뜬 승객들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불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려 해도 벡터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바다는 이미 불로 뒤덮여 있는 데다 상어까지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 10명과 함께 탑승했다 3km를 헤엄쳐 극적으로 구조된 한 생존자는 “바닷물을 마실 때마다 가솔린 냄새가 났다”며 “대부분 승객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탈출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충돌 2시간 만에 도나파즈는 승객들을 태운 채 물 속으로 모습을 감췄고 그로부터 2시간 뒤 유조선 벡터호도 침몰했다.
필리핀 해안 당국은 사고 발생 8시간 만에 사고 사실을 알았고 구조작업은 그로부터 8시간이 더 지난 뒤에 시작됐다.
이 때문에 온 몸에 화상을 입고 극적으로 구조된 승객과 선원 26명은 때마침 사고 해역을 지나가던 일반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사고 다음 날 도나파즈의 소유사는 사고 당시 여객선에는 승객 1493명과 선원 60명이 타고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복도에서 잠을 잔 승객이 많았다며 사고 당시 4000명 이상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고 5일 후 신원이 확인된 21명의 사망자 중 단 한 명만이 발표된 탑승자 명단에 있었고 탑승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2000명 이상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사고 12년 후 필리핀 대법원은 도나파즈가 40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도나파즈 침몰 사고 이전까지 최악의 해상 사고는 1503명이 숨진 1912년의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였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