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신양면 한 농촌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재혁(10·가명)의 별명은 '우산돌이'.
또래보다 덩치가 작은 재혁이가 자기 키만한 우산을 낑낑 대며 들고 다녀 이런 별명이 붙었다.
재혁이가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에도 어김없이 우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 무렵.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73)가 우산을 전해 주러 학교에 오던 중 빗길에 미끄러진 뒤부터다.
할머니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재혁이는 이날 놀란 마음에 하루 종일 울었다. 이 때부터 재혁이는 할머니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해 항상 우산을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얼마 전 재혁이가 깜박 잊고 우산을 챙기지 않고 학교에 온 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재혁이는 이날 수업이 끝난 뒤 정신없이 집으로 뛰었다. 혹시 집에 두고 온 우산을 보고 할머니가 학교에 오다 다치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
비에 흠뻑 젖은 재혁이를 본 할머니는 "불쌍한 내 새끼"라는 말만 반복하며 끌어안고 흐느꼈다. 재혁이는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할머니가 더 미안해 할 것 같아' 꾹 참았다. 대신 "잊지말고 우산을 꼭 챙겨야지"라고 되뇌었다.
재혁이 세 식구는 정부 보조금 70만 원 가량으로 한 달을 버티는 조손가족이다. 아버지는 재혁이가 세 살 때 이혼한 뒤 집을 나갔고 이후 어머니도 가출해 소식이 끊긴 상태. 할아버지(79), 할머니는 몸이 아파 일을 할 수가 없다.
할머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몸이 아프고 못 먹는 건 괜찮은데 재혁이 학용품 못 사주는 게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훔친다.
그러나 재혁이는 얼마 되지 않는 용돈까지 대부분 저축한다. 나중에 그 돈으로 큰 집을 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함께 살고 싶은 꿈이 있다.
재혁이는 "그동안 모은 용돈 중 일부로 성탄절에 할머니껜 양말, 할아버지껜 면도기를 선물해 줄 거예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재혁이를 후원하는 어린이재단 백미진 선생님은 "올 겨울 성탄절엔 재혁이 같은 조손가족 어린이들이 모두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