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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입력 | 2008-12-22 02:58:00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박경철 지음/리더스 북

《“나는 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가 누구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얼마를 가졌든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전하는 전령사가 된다.” 저자 박경철은 온라인 증권사이트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글을 게재하다가 쓴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이 책은 경북 안동의 병원을 배경으로 그의 본업인 의사로서 살아가며 만난 이웃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시골의사가 만난 이웃의 고단한 삶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다. “세속적 기준의 성취를 이룬 분도 없고 오히려 그보다 못한 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삶을 한순간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분들”이다.

남편이 신장암으로 사망하자 인근 빌딩에서 청소 일을 시작한 한 여성이 빚 독촉에 시달리자 울면서 통사정을 하는 모습을 덤덤하게 묘사한다.

“왼손에는 한 입 베어 문 열무김치 한 조각이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색 바랜 양은도시락에 담긴 차가운 밥과 검정 비닐에 싼 열무김치, 그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서러운 식사를 하는 중에 빚 독촉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귀에 종양이 생겼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의병전역을 바라지 않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 조카들이 자신을 흉내 내며 놀리는 것이 속상해 술을 마시다 병이 생긴 정신지체장애인,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병원 대기실을 찾는 할머니와 손자, 진료비를 깎아주자 생닭을 답례로 선물한 노부부 등 병원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인생들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우리 이웃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고단하고 치열하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착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며 제목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내 소중한 이웃들의 삶에서 결정적 순간들을 지켜본 ‘내레이터’의 입장이 될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순간순간 ‘내레이터’의 역할에서 뛰쳐나가고 만다.

그는 내시경 검사 결과 ‘아데노 칼시노마’(선암)라는 결과가 나온 환자에게 간단한 처방만 해 주고 결과 전달은 추석 이후로 미룬다. 아내를 잃고 아들만 데리고 사는 환자가 추석 때 처가에 맡긴 딸을 데려와 함께 명절을 보내기로 한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담관암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희망을 달라는 남편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담관암을 극복한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봐주기도 한다.

그는 의사로서 냉정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가 이 책의 매력이다.

이전 책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았던 개인사도 소개된다. ‘일가친척마저 등을 돌린’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힘이 되어줬던 두 친구 중 하나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아내가 되었다는 사연을 소개한다. 대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년이 지나도록 가족 몰래 밤에 아버지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던 일, 마흔이 넘어 얻은 딸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병’이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지극한 사랑을 드러낸다.

이 책에 담긴 40개의 이야기는 감정에 호소하는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힘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 못지않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