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국기업 비정상 철수’ 첫 지침
《중국 정부가 ‘무단 철수(비정상 청산 철수)’하는 외자 기업의 책임을 국제소송까지도 불사해 끝까지 묻기로 함에 따라 경영난을 겪고 있는 외자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중국 언론은 한국 중소기업 가운데 무단 철수를 감행하는 기업이 많다고 보도해 이번 지침이 한국 기업을 겨냥했음을 시사했다.》
칭다오서만 2만6000명 302억원 체임
사회문제 번질 우려에 중앙정부가 나서
▽외자 기업이 사회불안 야기…강력 대처=중국 정부의 이번 지침 마련은 무엇보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로 중국에서도 외자 기업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62만300여 개의 외자 기업 중 저임금에 의존하는 중소업체가 많은 한국 홍콩 대만 기업은 현재 상당수가 도산 위기에 몰렸다.
특히 중국은 기업이 망하고 경영주가 도주해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와 항의하면 지방정부가 밀린 임금을 대신 내주고 무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산한 기업의 채무나 원자재 제공 기업의 손해도 문제지만 노동자의 임금을 떼먹고 도산하는 기업 때문에 사회불안이 점차 커지고 있다. 사회불안은 곧바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지방정부가 처리하던 외자 기업의 무단 철수 문제를 중앙정부가 해결하겠다고 직접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기업 큰 타격 입을 듯=지난해 말 현재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만2142개에 투자금액은 328억500만 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해외투자 중 금액으로는 24%, 기업 수로는 46%다.
한국의 대중(對中) 투자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다 업체 수로는 2005년 6115개를 고비로, 투자 액수로는 2004년 62억4786만 달러를 정점으로 점차 줄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의 95% 이상이 영세기업이라는 점이다. 특히 올해 새 노동법이 시행되고 법인세율이 높아지면서 임금 등 기업 부담이 30∼50% 증가한 데다 최근 금융위기마저 겹쳐 중국 진출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200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에 있는 8344개 한국 기업 중 206개가 무단 철수했다. 2006년 43개였던 무단 철수 기업은 지난해 87개로 2배로 느는 등 최근 급증 추세다.
206개 한국 기업의 무단 철수로 직장을 잃은 직원은 약 2만6000명이고 이들에게 미지급된 임금은 총 1억6000만 위안(약 302억 원)으로 집계됐다. 1인당 6150위안꼴로 중국인 직원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이들 기업의 은행 부채는 총 7억 위안이다.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협력연구원 메이신위(梅新育) 부연구원은 “최근 무단 철수기업 중엔 한국의 중소기업이 많지만 앞으로는 대기업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단 철수 배경=가장 큰 원인은 물론 기업주가 현재의 회사 자산으로는 채무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법률에도 문제는 있다. 올해 1월 중국은 1996년 7월부터 외자 기업에만 적용하던 ‘외상투자기업 청산방법’을 폐지하고 ‘중화인민공화국 회사법’을 적용해 내·외자 기업을 똑같은 방식으로 청산하도록 했다.
하지만 현재 관련 규정이 미비해 성(省)별로 서로 다르게 처리하거나 심지어 구(舊)법으로 처리하는 등 들쭉날쭉하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 한국기업들 “中정부가 비정상적” 하소연 ▼
《“‘중국에서 외국 기업이 철수하려 하면 그 순간 바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워낙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예상치 못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중국 산둥(山東) 성의 한 도시에서 전자제품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A 사장은 중국 정부의 ‘외자 기업의 비정상 철수에 대한 지침’에 대해 “오히려 외자 기업의 사업 철수를 막는 중국 정부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인건비가 오르고 원화 환율도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면서 적자가 누적돼 많은 한국 기업이 기업 청산 후 철수를 생각하지만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인 방해 때문에 도저히 사업을 접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
인건비-환율 올라 적자 눈덩이처럼 커져
청산 ‘공무원 맘대로’… 2년씩 걸리기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청산을 하기 위해서는 청산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청산위원회에는 중국 정부 당국자도 참여하게끔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정부와 청산위원회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벌어진다.
우선 현지 정부는 중국에서 경영한 지 10년을 넘지 않으면 그동안 받았던 각종 특혜 조치의 혜택을 모두 반납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 기업을 유치할 때 실시했던 기업소득세 감면, 저가(低價) 토지 양도 등으로 인한 이익을 청산할 때는 고스란히 ‘토해내야’ 한다.
인력 구조조정과 임대차계약의 중도 해지도 어렵다. 특히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때 법적 분쟁이 빈발하고 법정의 판결은 대체로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내려진다.
중국의 청산 관련 법률은 일관성이 없고 법규 간 내용이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애매한 경우는 수개월씩 법규 해석을 연기하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투자를 위해 진출하는 기업에는 일사불란하게 ‘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하지만 청산 수속을 밟는 기업에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해 놨다. 기존 등록지 심사허가 부처에서 일일이 변경 등록을 받는 등의 절차를 거치면 청산 수속 기간은 짧게는 8개월에서 길게는 2년 가까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청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몇 배나 증가하고 청산 기간도 기약 없이 늘어난다는 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의 설명이다.
강남훈 중기중앙회 대외협력본부장은 “많은 중소기업이 중국 내 자산 처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몸만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중국 정부도 투자 유치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청산 절차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