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前회장 재판지연에 새해 경영계획 차질
내달 초 임원인사도 연기 가능성
일부선 ‘지나친 눈치보기’ 지적
“재판이 끝나야 뭐라도 하죠. 지금은 아무것도 못해요.”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최근 회사 내의 답답한 분위기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상고심 선고 결과가 계속 미뤄지면서 삼성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고민이 세밑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선 각 사업부문 총괄사장을 포함한 내년 임원진 구성 시점이 오리무중이다. 삼성 임원 인사는 보통 1월 초순 이뤄지는 것이 관행이지만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연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인사가 훨씬 늦춰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회사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올해도 특검 때문에 임원 인사가 5월에 이뤄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경영상으로는 매우 안정적인 때였다”며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의 ‘리더십 부재’는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사정은 녹록지만은 않다.
근근이 버텨온 반도체사업과 액정표시장치(LCD)사업은 4분기(10∼12월) 대규모 적자를 내는 것은 물론 내년 1분기(1∼3월)에 적자폭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일부 증권사는 삼성전자가 올해 4분기에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4분기 영업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면 2000년 분기 실적을 집계한 이후 처음이다. 이에 앞서 일부 외국 투자은행들은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탓에 경영계획을 아직 확정짓지 못한 것도 큰 부담이다.
삼성전자의 다른 임원은 “경영계획을 확정하지 않고 시나리오 경영을 한다고는 했지만 시나리오 경영 또한 중요한 결정이 제때 내려져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인사 연기로 상당한 ‘기회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이런 분위기는 LG그룹과 SK그룹이 19일 대규모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내년 청사진 그리기에 본격 돌입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삼성은 올 3월 결정한 계열사 임원들의 장기성과급 지급도 차일피일 미루다 최근에야 지급을 공식화한 바 있다.
한편 전자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으로서는 이 전 회장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만 ‘눈치 보기’로 경영 관련 사안을 자신 있게 결정하지 못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동아닷컴 신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