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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불행의 씨앗 싹트나

입력 | 2008-12-23 03:07:00


美 자국기업 지원하자 주요20개국 보호무역 강화

“우리도 살자” 러-인도 등 잇따라 관세 인상

‘무역장벽’ 높아지면 성장저해 악순환 우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자동차 ‘빅3’ 구제방안이 논의되던 지난달 말 일부 경제 전문가는 향후 여파를 우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경기침체를 이유로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시작하면 다른 나라들도 경쟁적으로 이에 나서게 된다는 것. 이는 무역장벽 강화와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져 글로벌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2일 워싱턴포스트는 “자유시장경제를 지키겠다던 주요 20개국(G20)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각국이 약속을 깨고 있다”며 그 실태를 보도했다.

○ 주요국 규제 강화 동참

러시아는 최근 자국의 라다 자동차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수입 자동차 관세를 최고 35%로 인상한 데 이어 돼지고기와 가금류 관세도 올렸다. 이에 앞서 인도 정부는 지난달 농민 보호를 내세워 수입 콩기름에 20%의 추가 관세를 물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달에만 최소 500개 수입품목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고, 프랑스는 자국 기업을 해외 인수합병(M&A)으로부터 막기 위한 국가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수입 와인과 직물 등에 대한 관세 인상안을 검토 중이다.

이 밖에 중국은 상하이자동차(SAIC)와 광저우자동차그룹(GAG)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도 사상 첫 영업 적자에 직면한 도요타 등 자동차업체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유럽연합(EU)은 초기에만 해도 “미국이 부당하게 자국 기업을 지원하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회원국들이 연달아 자동차 구제금융에 나서면서 급속히 힘을 잃었다.

○ 대공황 유발 원인은 무역장벽

경제학자들은 이런 상황이 1930년대처럼 글로벌 관세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당시 미국 기업의 보호를 위해 2만 개가 넘는 품목에 기록적 관세를 부과한 ‘스무트-홀리 법’은 전 세계의 무역장벽을 높여 결과적으로 대공황을 유발하는 한 원인이 됐다.

에스워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수출 기업들은 혁신적이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며 “무역장벽은 이들의 활동을 막아 경제 전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연쇄적 악순환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무역 확대를 목표로 한 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도 더 낮아졌다. 계속된 협상에서도 회원국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한 데 이어 연내 각료회의 개최 시도도 끝내 무산됐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