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포장 다 됐나요?" "라이터가 빠졌어요."
21일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 3층은 산타들이 북적대는 '산타 마을'로 변했다.
선물에 리본을 묶으랴, 캐롤송 연습을 하랴, 반짝이 장식을 붙이랴 산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어린이들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는 듯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날 산타로 나선 사람들은 대학생 주부 회사원 등 평범한 동네 주민들. 양천구 자원봉사자 나눔연대가 붙인 '사랑의 몰래 산타' 공고를 보고 올 겨울 산타가 되기로 결심했다. 결식아동이나 무료 방과 후 교실 학생 등을 찾아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고 캐럴을 불러주는 역할을 맡았다.
'사랑의 몰래 산타'는 2004년 경기지역 한 청년단체가 크리스마스에 저소득 가정 자녀를 위한 무료 방과 후 공부방 아이들을 찾아가서 선물을 전해주기 시작한 데서 유래됐다. 이후 널리 알려져 전국 곳곳에서 지역 봉사단체나 사회복지관 주최로 열리고 있다.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맡게 된 대학생 최홍석(23) 씨. 빨간 옷과 모자로 산타 분장을 하고 하얀 수염을 붙이자 제법 산타 할아버지 같다. 최씨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신에 몰래 산타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며 "비록 용돈 벌 기회를 놓쳤지만 마음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며 산타 가방을 둘러맸다.
산타와 루돌프 인솔을 맡은 주부 구미영(35) 씨는 전봇대에 붙은 '몰래 산타' 모집 공고를 보고 평소 후원하던 고아원 아이들이 떠올라 자원했다. 구씨는 "내 아이 또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며 "크리스마스에 더욱 외로울 아이들이 생각나 조카들과 함께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날 오후 5시 30분 경.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몰래 산타'들이 길을 나선다.
첫 번째 방문할 집은 엄마와 둘이 사는 정아람(가명·10) 양의 집. 각자 맡은 역할을 다시 한 번 연습해 본다. 눈 스프레이가 잘 뿌려지지 않는다는 산타, 아람에게 건넬 말을 연습하는 산타, 여기저기서 "떨려, 떨려"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영하로 내려간 추운 날씨 탓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산타가 될 생각에,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설레는 듯 했다.
"아람아, 메리 크리스마스!"
10명의 산타와 루돌프들이 손을 흔들자 아람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람은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그려진 물감과 팔레트를 선물로 받았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과 포옹에 수줍어하던 아람이가 "나중에 화가나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선물을 만지작거리던 아람이가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다"며 엄마 품을 파고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 되는 이계선(18) 양은 수험생이 되기 전에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어 친구 오세미(18) 양과 함께 몰래 산타에 참여 했다. 이양은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니 앞으로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경기 한파 때문에 더 춥게 느껴지는 2008년 겨울. 서울 한복판에도 산타 할아버지는 있었다. 아람이네 집을 나서 또 다른 집을 향하는 산타들의 뒷모습에 웃음이 피어났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