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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보호무역 전쟁

입력 | 2008-12-24 03:05:00


미국은 자유무역의 수호신같이 굴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전범(典範)으로 삼는 에이브러햄 링컨(재임 1861∼1865년)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강력한 보호무역 신봉자였다. 남북전쟁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율의 세금을 부과할 정도였다. 종전과 함께 국내 세금은 원상회복됐지만 관세는 1913년까지 전시(戰時) 수준을 유지했다. 이 덕분에 당시 유럽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던 미국의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자 미국은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2만 개가 넘는 품목에 평균 48%의 관세를 부과하는 초강력 보호무역법을 만들었다. 스무트-홀리법이 바로 그것이다. 컬럼비아대 재그디시 바그와티 경제학 교수는 이 법을 “가장 명확하고 극단적으로 어리석은 반(反)무역법이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이렇게 나오자 자유무역을 신봉하던 영국도 1932년 관세를 재도입함으로써 자유무역체제는 막을 내렸다.

▷자유 시장경제를 지키겠다던 주요 20개국(G20)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리고 있다. 자국 자동차산업의 보호를 이유로 러시아가 관세를 최고 35%까지 인상했고 일본과 중국도 곧 대대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오바마 당선인이 미국 자동차 빅3에 대한 구제금융을 촉구할 때부터 예견되긴 했다. 하지만 북한까지 자신들이 조립 생산하는 자동차(평화자동차)를 보호하기 위해 외제차에 대한 관세를 100% 인상했다는 소식이고 보면 가히 ‘관세전쟁’이다.

▷1930년대의 보호무역은 세계의 무역장벽을 높여 경기침체를 부르고 대공황으로부터의 회복을 더디게 했다. 독일과 일본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카르텔을 조직했고 이것이 파시즘을 불러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보호무역은 자국 산업의 육성, 보호에 한시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930년대가 아니다. 인터넷과 무선통신으로 세계시장은 실시간 움직인다. 국경을 초월한 대외거래가 많아져 기업이윤이 한 나라에 집중되지도 않는다. 이런 마당에 보호무역 전쟁이라니, 그 파도가 부메랑이 되어 지구촌을 덮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