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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불황에 배달나선 택배업체 사장 참변

입력 | 2008-12-24 19:40:00


불황 때문에 인건비를 아끼려 직접 배달에 나섰던 택배업체 사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서울 노량진의 한 도로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장모(55) 씨는 뒤에 오던 승합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인 23일 오후 3시의 일이다.

"남들보다 빨리"라는 목표에 심혈을 기울여 온 장 씨는 고생 끝에 찾아온 낙을 누리기도 전에 서둘러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다 생계가 어려워 8년 전 귀국한 장 씨는 퀵서비스 배달부로 시작해 3년 만에 택배업체를 차렸다. 남들이 하나 배달하고 쉴 때 매일 13시간씩 쉬지 않고 일해 일궈낸 성취였다.

배달부들을 고용해 사업을 꾸려가는 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게 다반사였고 배달 사고가 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직원도 드물었다. 5년을 고군분투하다 올해 들어 사업이 안정을 찾았다.

그 제서야 장 씨는 작은 욕심을 부렸다. 한순간도 '여유'를 선물하지 못했던 가족들과 배달용 승합차 대신 중고 승용차를 사서 오붓하게 겨울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틈날 때마다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 들어가 차를 고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최근 닥쳐온 불황은 장 씨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주문량이 크게 떨어지면서 월수입이 반으로 줄었다. 중고차라도 사려면 사장이지만 직접 배달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달, 23일 장 씨는 직원이 두고 간 물건을 대신 배달하다가 변을 당했다.

24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장 씨의 누나는 "동생이 8대독자에 유복자인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어려울 때일수록 착실히 일하면 살아날 구멍이 있다며 아득바득 살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초등학생 딸과의 크리스마스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마흔 셋에 얻은 늦둥이 외동딸은 '휘슬'이란 악기를 갖고 싶어 했다. 장 씨는 딸과 함께 서울 낙원상가에 가서 휘슬을 사주고 청계광장에 들러 루미나리에도 구경할 계획이었다.

부인 박 씨는 어린 딸이 충격을 받을까봐 사고 소식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박 씨는 "밤늦게 까지 물건을 배달하고 들어오는 아빠를 기다렸다가 하루 일과를 재잘재잘 다 이야기하고 나서야 잠이 들던 아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남편을 대신해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딸에게 휘슬을 사주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루미나리에도 보여줄 계획이다. 그리고 나서 남편이 잠들어 있는 장례식장에 데리고 올 생각이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