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승부수에 産銀의 선택 주목
대우조선해양 매각에 ‘빨간불’이 켜졌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한화그룹이 24일 인수 대금 납부 조건을 바꿔주지 않으면 본계약을 맺지 못한다는 방침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가 ‘벼랑 끝 전술’을 썼다는 시각도 있다. 대우조선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인수 대금 납부 조건을 유리하게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압박 신호를 보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조선 경기 하락으로 대우조선 가치가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인수자금 조달에 부담을 느낀 한화가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이행보증금으로 낸 3000억 원을 포기하는 ‘손절매(損切賣)’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재계 일부 “한화의 벼랑끝 전술”
이달 초만 해도 한화 측은 ‘반드시 대우조선을 인수한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자금 마련 계획도 애초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10월 말에 밝힌 9조 원보다는 낮아졌지만 6조 원대는 거뜬하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대우조선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자금 경색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전체 인수 대금의 절반 이하인 3조 원으로 줄어들면서 극단적으로 계약 포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보름 만에 큰 견해차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확약서(LOC)까지 제출했던 주요 전략적, 재무적 투자자들이 ‘투자 불가’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은행 농협 등이 경기침체를 이유로 투자 의향을 접었다. 국민연금과의 협상도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화는 궁지에 몰렸고 현재로선 산은의 융통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화 측은 “양해각서(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본계약에선 달라진 경제 상황을 반영해 주기 바란다”며 “산은이 잔금 납입 기간을 연장하고 분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주식 및 부동산을 제값에 팔 수 있고 투자자들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어 선순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인수자문을 총괄하고 있는 JP모간을 통해 산은에 이 같은 방침을 전달했고 산은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한화는 본계약 실시 직전인 이번 주말 경 산은이 절충안을 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산은, 협상 파기되면 큰 손해
산은은 한화가 인수금을 마련하지 못하겠다며 납부 기한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에 난감해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한화가 MOU에 명시한 대로 이달 29일 본계약을 체결하고 3월 말까지 잔금 납부를 완료해야 한다”며 “납입기한 연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고 그런 뜻을 한화에 계속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가 MOU를 지키지 못한다면 산은은 입찰보증금으로 받아둔 3000억 원을 ‘과외수입’으로 챙길 수 있지만 공개경쟁입찰을 다시 추진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재입찰을 하면 매각 대금을 현재보다 낮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다. 조선업계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내년 경기도 올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우조선 인수에 새로 나설 기업들이 가격을 이전보다 훨씬 낮게 써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금융계에서는 한화와 산은이 서로의 방침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다 막판에 극적인 타협점을 찾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