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이장이자 ‘국순당 고창명주’ 회장인 현홍순 씨가 23일 복분자 공장에서 포장되어 나온 복분자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 국순당 고창명주
전북 고창군 심원면에서 30년째 마을이장을 해온 현홍순(64) 씨는 이제 회장님으로 불린 다. 지난해 전통주 제조업체인 국순당과 합작해 '국순당 고창명주'라는 영농법인을 세우면서 대표이사가 됐기 때문.
불황으로 문 닫는 중소기업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현 씨는 고창의 명물인 복분자주를 팔아 올해 첫 수입으로 100억 원을 올렸다. 70년대 말 위독한 아버지를 간호하려 서울에서 귀향해 밭 세마지기로 농사를 시작한 지 30년 만의 쾌거였다.
낮에는 농부로, 밤에는 컴퓨터를 하는 회장님으로 사는 현 씨. "밭에서 무심코 전화를 받다가 '현 회장님이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면 깜짝 놀란다"고 했다.
현 씨가 고창에서 복분자 재배를 시작한 건 1994년부터. 복분자 작목회를 결성하기 위해 3년간 주민들을 어렵게 설득해야했다. 서울의 대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주류시장에서 고창복분자주가 어떻게 판로를 개척하느냐가 고민이었다.
현 씨는 우선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국내 최대 주류업체가 복분자주를 만들자며 5번이나 제안을 해왔지만 그는 "우리 술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곳과 만들겠다"며 거절했다. 대신 강원도 정선의 오가자주로 기업과 농민의 성공신화를 쓴 적이 있는 국순당과 손을 잡았다.
현 씨의 두 번째 전략을 철저한 고급화. 그는 1년에 8차례에 걸쳐 수확한 복분자 중 품질이 가장 좋은 2번째, 3번째 복분자만 썼다.
그래서 작황이 아무리 좋아도 선택되는 복분자는 많지 않았다. 결국 "최고가 아니면 술을 빚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그렇게 만든 첫 작품 '명작 복분자'는 출시 두 달 만에 전량이 팔렸다.
시골 이장의 100억 매출에는 현 씨 특유의 뚝심도 작용했다. 인근 지역 농민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정치적 요인에 휘말려 일희일비할 때 그는 40명이던 작목반을 400명으로 키워 고급 복분자 생산에만 주력했다.
현 씨는 "한미FTA다, 경제위기다 해서 농민들이 외부요인에 휘둘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시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잘 생각해보고 질 좋은 농산물을 착실히 키우면 우리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자연히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