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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산책]신기해/나를 부끄럽게 만든 할아버지의 배려

입력 | 2008-12-26 02:57:00


서울 지하철 1호선을 보면 시시각각 수많은 표정의 사람이 타고 내린다. 부족한 잠 때문에 피곤한 얼굴, 일상의 되풀이에 지친 표정, 어디 자리 없나 두리번두리번거리는 모습은 보기에 안쓰럽다. 주변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볼륨을 크게 해 놓고 음악을 듣거나 먼저 타겠다고 앞사람을 밀어대는 사람에게서는 남을 위한 배려와 마음의 여유라고는 찾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언젠가 운 좋게도 자리가 생겼다. 과제를 하려고 갖고 나온 노트북PC를 무릎 위에 올리고 신문을 펼쳤는데 다음 역에서 할아버지가 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서서 가기엔 짐 때문에 불편하고, 할아버지를 모른 척하자니 양심에 찔리고. 다른 시간대 같았으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모른 척할 수 있었을 텐데 이리저리 부딪히고 서 있기 불편한 출근시간대라 양보해 드리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의 오른쪽 팔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며 “여기 앉으세요”라고 했다. 대부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앉을 텐데 이분의 답변은 “나 곧 내려요”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출입문 쪽에 가까이 서서 오른쪽 손으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계셨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찡했다. 할아버지는 세 정거장 만에 내렸다. 10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신호대기로 15분이나 걸려 그만큼 더 서 계셨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금방 내린다며 서 있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사람들이 언제 내리는지 지하철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주위를 돌아보던 내 모습이 새삼 부끄러웠다. 몸이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으면서 무엇 때문에 자리에 집착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든의 할아버지가 북적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음의 여유를 보였듯이 모두가 피곤하고 고단한 아침 시간에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젊은이가 세월이 흘러서도 ‘여든의 미소’를 보여줄 수 있도록.

신기해 숙명여대 2학년 언론정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