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충격파에 세계 굴지의 대학들도 떨고 있다. 높은 기금 운용 수익률을 자랑하던 하버드대마저 올해는 작년 대비 80억 달러, 22%의 손실을 봤다. 40년 만에 최악의 운용 성적이다. 대학들은 기금운용 실적이 부진하면 장학금부터 줄인다. 하버드대는 금년에 장학금을 대대적으로 제공해 사상 최고의 입학경쟁률을 기록했지만 내년엔 장학금이 줄어 우수 학생과 저소득층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등록금 동결조치로 가뜩이나 학교 재정이 어려운 판국에 고려대와 연세대가 각각 경영대의 정시모집 수능 우선선발 합격자 전원에게 4년간 전액장학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고려대는 공대 신입생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경영대 전액장학금’은 국내 양대 사립대의 자존심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연세대 경영대는 ‘2008학년도 일반전형 합격자의 75%가 수능 전 영역 1등급’이라는 자료를 돌렸다. 고려대 경영대는 ‘고대 경영이 서울대보다 더 좋아요’라는 광고 카피로 연세대를 ‘건드리지 않고 베는’ 검법(劍法)을 구사했다.
▷고려대는 전통적으로 법대가 강했지만 최근 몇 년간 경영대 육성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고연(高延) 두 대학이 파격적 장학금을 제공하게 된 데는 서울대의 입시제도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대는 그동안 자격고사로만 유지하던 수능을 2010학년도 입시에선 2단계 전형에 반영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수능 성적이 좋은 특목고 학생의 서울대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지금까지 반사이익을 누렸던 고려대와 연세대가 위기감을 느낄 만하다.
▷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대학들이 장학금 혜택을 늘리는 전략은 기업이 불황 때 투자를 늘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사립대에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두 대학이 장학금 혜택을 경영대에 집중하는 것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장학금이 없어도 인재가 몰리는 인기학과보다는 문사철(文史哲) 수물화생(數物化生) 같은 인문학 및 기초과학에 더 많은 장학금을 제공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두 대학에 가보면 경영대는 내부 시설이 ‘호텔급’이라 기초학문을 하는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 매사 기초가 중요하다고 하건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