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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동욱]국민 섬기는 1급 공무원 뽑으라

입력 | 2008-12-27 02:59:00


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젊은 실장님과 달리 중앙부처에서의 실장은 대부분 50대 중반이고 소속 조직에서 30여 년 일한 베테랑 공무원이다. 부처 내에서 보면 장차관이 2년을 버티기 어려운 손님인 반면 1급 실장은 오랜 공무원 경력으로 조직 내외의 두터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조직의 이익을 대표하는 숨은 주인이기도 하다.

연고주의 아닌 역량과 열의로

최근 공무원사회에서 이들 1급 공무원의 집단 사표와 인적쇄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5대 국정지표의 하나로 ‘섬기는 정부’를 제시한 이명박 정부 아래서 올 한 해 동안 공무원 조직이 국민을 얼마나 잘 섬겼는지에 의문이 든다. 국민은 태안 기름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의 모습은 생생히 기억하지만 국민의 요구와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정부 출범 첫해에는 선거 과정에서 나온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한 정책을 결정하고 이를 위해 관련 법령의 정비 작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데 올해의 정부 발의 입법활동은 대단히 부진했다. 적지 않은 중앙정부 공무원이 과거와 달리 성공적 입법은 여야 정당 간의 갈등과 타협에 달려 있고 자신들은 지켜만 본다는 수동적인 인식을 보였다. 특히 고위공무원이 소신과 책임을 잊고 조직개편에 따른 자기 자리 찾기에 적극적이었지만 중요한 정책 비전이나 추진동력을 갖추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대규모 조직개편과 촛불시위 여파로 고위공무원 인사쇄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제야 새 국정철학과 정책기조에 맞는 공무원 진영을 갖추려고 한다. 행정안전부, 농촌진흥청 등 일부 행정기관에서 진행된 대국대과(大局大課) 형태의 부서개편과 이에 따른 고위직 인사가 교육과학기술부, 외교통상부 등 많은 행정기관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업공무원의 최상위직인 1급 공무원부터 쇄신하는 일은 모든 공무원에게 변화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긴장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후속 인사가 업무 역량과 열의가 아닌 정파 출신지역 출신학교 등 연고주의에 따라 이뤄진다면 정부 출범 직후의 인사파동 못지않은 홍역을 치를 것이다. 조직과 인사의 쇄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 싶다.

첫째, 부처는 대규모 정부 기능과 조직을 개편 한 후 지난 10개월간의 조직운영 성과와 문제점을 평가하고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수립된 새 국정방향에 적합한 조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대국대과 원칙을 수용하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금융 국제협력 일자리 사회안전 홍보 등의 기능 보강과 불필요한 규제 및 행정절차 관련 기능에 대한 과감한 축소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후 조직 통합 과정에서 잉여 인력을 위해 만든 부서나 기관이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장차관 인사권한 존중해줘야

둘째, 고위공무원의 자질인 국민에 대한 강한 봉사의식, 일을 완성하여 결과를 얻는 추진력, 전문성과 전략적 사고능력, 갈등을 조정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능력이 조직 내외에서 검증된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 장차관과 소통하면서 부하직원의 능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역량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인사권자는 기존 보직경로상의 예비후보자만이 아니라 창의적이거나 성과가 뛰어난 공직자에게도 발탁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는 부처 고위직에 대한 장차관의 인사권한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사후적인 인사검증 기능만 수행해야 한다. 인사권한이 약한 기관장을 부처 공무원이 잠시 머무는 손님으로 여기고 청와대 눈치만 살피게 되면 중복 상충하는 지시가 빈번해지고 정책혼선이 야기되면서 결국 공무원은 무사안일의 늪에 빠지고 만다. 새해에는 장차관이 인사를 조기에 마무리하고 부하 공무원과 함께 신명나게 일하기를 기대한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