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그림=피터 시스, 주니어김영사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선 벽돌 한 장을 더 쌓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 생각한 점은 이웃의 시시콜콜하고 역겨운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가슴 높이만큼만 벽돌을 쌓았는데도 조그만 바람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밤낮으로 쉴 새 없이 들려오던 이웃의 변덕스러운 악다구니와 소름 끼치는 소음이 바람에 떠밀리는 구름처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나 명예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바깥세상의 소용돌이가 벽돌 한 장이란 작은 칸막이로도 명백하게 차단된다는 점에 그는 고무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과 기품이 그로 말미암아 훼손됨이 없이 고스란히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벽돌 쌓기는 계속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가산을 털어 자신의 키 높이 만큼 벽돌을 높이 쌓아올렸습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가녀리게 들려오던 바깥쪽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그의 넓은 사유지 안은 조용하고 따뜻했습니다. 잡다한 소음이 제거된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땅과 청결한 햇볕으로 경작지를 일구고 가꾸어 남들이 부러워할 먹을거리를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성과에 도취된 그는 이제 벽돌 따위를 쌓는 일이 아니라 아예 성을 쌓기로 마음먹습니다. 그것만이 탐욕스러운 허풍쟁이가 들끓는 세상과 단호하게 결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젖을 짤 수 있는 양과 농경지를 가꿀 수 있는 소와 가족의 섭생을 조달 받을 수 있는 가축을 구입하여 자신의 성안에 가두어 기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이 총궐기하여 성벽을 더 높고 튼실하게 쌓았습니다. 이제 성안에서 바라보이는 바깥세상의 풍경은 항아리에 빠진 듯이 작고 동그란 하늘만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희망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성을 중심으로 작지만 독립된 국가를 세우는 작업입니다. 먼저 필요한 일은 축성작업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뚫어 두었던 작은 출입구마저 막아버리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과감하게 성문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공포하는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성의 문루에 난데없는 국기 하나가 게양되어 바람에 펄럭이던 바로 그날, 성문 바깥쪽에 해당하는 문루에서는 정신병원이 개원해 현판식이 조촐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