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치인이 되려면 과거에 한 나쁜 짓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철면피 소리를 들어도 낯을 붉히지 않을 정도로 몰염치해야 한다. 국회 회의실 출입문이 쇠망치와 전기톱으로 부서지는 낯 뜨거운 현장 사진이 외국 언론에 실려 나라 망신을 시키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을 보라.
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야당의 극력 저지라는 역할극은 역사가 오래됐다. 강행 처리하겠다는 여당이나 저지하는 야당 모두 ‘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대국민 설득은 보기 어렵다. 법안 처리와 저지라는 목표에만 충실한 돌격대들일 뿐이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5년 12월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할 때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은 날치기 처리에 항의해 12일 동안 국회의장실을 점거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1월에는 공동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교원노조법 등 70여 개 법안을 단독 처리했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에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노동법 개정안 등 20여 개 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민주당은 지금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여당이었던 17대 국회 때는 여당 출신 국회의장을 통해 5차례나 ‘이명박 특검법’, 사학법, 로스쿨법 등을 직권상정한 ‘전과’가 있다.
법안 강행 처리와 육탄 저지는 여야 관계 악화, 정국 경색, 민심의 역풍이란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 국회의 고질병이다. 날치기 처리된 일부 법률이 위헌 판정을 받거나 재개정되는 것도 비슷했다. 그런데도 여야의 역할만 바뀐 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의원들이 기억상실증 환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여야의 ‘3류 역할극’은 대표적인 후진국형 정치로 사라져야 한다. 차라리 선진국 의회에서 통용되는 합법적 의사진행 지연 방법인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도입하는 것은 어떤가. 현행 국회법은 의원들의 발언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해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하다.
미국 상원에서는 의원들의 발언 시간을 제한하지 않아 필리버스터가 가능하다. 그러나 소수당에 의한 필리버스터가 남발돼 국정 수행이 어려워지자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인 1917년 상원 본회의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고 표결에 들어가는 토론종결(cloture) 규칙이 도입됐다.
토론종결 조건은 1975년 상원 재적의원(100명)의 5분의 3(60명) 이상 동의로 완화됐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는 여전히 다수결과 소수의견 존중이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모두 살리는 정치적 묘수라고 할 수 있다. 상원의원 출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 필리버스터를 “다수의 횡포 위험을 차단하는 방화벽 구실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미국 상원의 소수당이 아무 때나 필리버스터 카드를 쓰는 건 아니다. 명분도 없이 필리버스터를 남발하면 선거 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수준 낮은 이종격투기 정치보다 국민이 토론을 듣고 판단할 기회라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말싸움 정치가 차라리 낫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