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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로 떼돈” 꿈 산산조각

입력 | 2008-12-29 02:58:00


■ 2008 펀드시장 결산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돈 까먹는 천덕꾸러기’로

국내외 주식형 펀드 64조 손실

작년 무역수지 흑자액의 3.4배

외형적인 규모는 21.5% 확대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 증시를 강타한 올해, 펀드시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焦土化)’됐다. 수많은 투자자가 반 토막 난 펀드 성적표를 받아들고 쓰린 가슴을 달래야 했다. 특히 알토란같은 노후자금을 송두리째 펀드에 넣은 가장들은 앞날이 막막한 상태다.

지난해까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펀드가 1년 만에 ‘돈 까먹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승승장구했던 대형 펀드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고 반 토막 펀드가 곳곳에서 속출했다.

하지만 교훈도 있었다. 펀드 투자자들은 올 한 해 엄청난 금전적 대가를 치르면서 ‘펀드도 주식처럼 위험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 신흥시장 집중 해외펀드 손실 더 커

세계 증시가 동반 폭락한 여파로 국내외 펀드는 모두 최악의 수익률을 보였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올 초부터 24일까지 평균수익률은 국내 주식형펀드가 ―38.60%, 해외 주식형펀드가 ―48.69%나 됐다.

해외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이 국내보다 더 나빴던 것은 주요 투자처가 국내 증시보다 하락폭이 훨씬 컸던 중국 러시아 등 신흥시장에 집중됐기 때문. 이 기간에 한국 코스피는 40.51% 하락했지만 러시아 RTS지수는 70.85% 폭락했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64.58% 떨어졌다. 운용사들이 분산투자에 대한 고려 없이 변동성이 큰 국가에 투자하도록 유도한 잘못도 크다.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및 해외 주식형펀드에서 64조 원가량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펀드평가사 제로인은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901조 원의 7%,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액인 146억 달러(약 19조 원)의 3.4배에 이르는 규모다.

○ 잘나가다 고꾸라진 펀드 속출

올해 글로벌 증시는 급등락을 반복했다. 이 때문에 상반기(1∼6월)에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유망 투자처로 꼽혔던 펀드가 하반기(7∼12월) 들어서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브라질펀드는 올해 5월 15일 기준 6개월 수익률이 17.22%로 같은 시점 국내 주식형펀드 수익률(―7.23%)을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브라질 증시가 5월 70,000 선을 넘기며 고점을 찍은 후 30,000 선까지 급락하면서 브라질펀드의 연초 이후 24일까지 수익률은 ―47.36%로 고꾸라졌다. 원자재펀드도 5월 15일 기준으로는 6개월 수익률이 10%를 넘었지만 하반기 원자재 값 폭락으로 수익률이 떨어졌다.

지난해 상승장에서 연간 수십 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린 ‘삼성당신을위한코리아대표주식종류형’ ‘미래에셋디스커버리주식형펀드’ 등 성장형펀드는 올해에는 대부분 상위권에서 탈락했다. 증시가 약세장으로 바뀌면서 삼성그룹 계열사 등 우량주에 투자하는 펀드와 배당주펀드, 가치주펀드 등이 선방했기 때문이다.

○ 환 헤지가 희비 가르기도

올해 해외 주식형펀드는 ‘환 헤지’ 여부에 따라 수익률 성패가 크게 갈렸다. 글로벌 증시가 동반 급락한 가운데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환 노출형 펀드들은 원화 약세 덕분에 원화 환산 수익률이 그나마 양호했다.

일본 증시에 투자하면서 환 헤지를 하지 않은 상품인 ‘삼성당신을위한N재팬주식종류형자 2_A’의 수익률은 연초 이후 이달 24일까지 ―6.04%로 설정액 50억 원 이상인 해외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프랭클린템플턴재팬플러스주식형-자Class A’도 ―9.88%로 선방했다.

하지만 똑같은 펀드인데도 환 헤지를 한 상품은 상황이 나빴다. ‘삼성당신을위한N재팬주식종류형자 1_A’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49.58%로 환 헤지를 한 동일 펀드와 수익률이 4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환 헤지를 한 ‘프랭클린템플턴재팬주식형-자(A)’는 수익률이 ―51.25%로 저조했다. 환 헤지 상품을 택한 투자자들은 증시 하락에 환차손까지 더해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 일부 펀드 수익…펀드시장은 외형 성장

대다수 투자자가 최악의 한 해를 보냈지만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도 있었다. 주가지수가 하락할 때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 ‘베어마켓인덱스펀드’는 올 들어 24일까지 35.60%의 수익률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펀드는 규모가 작아 소수만이 혜택을 누렸다.

올해 펀드시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외형적인 성장을 지속했다. 전체 펀드설정액은 지난해 말 298조 원에서 24일 362조 원으로 21.5% 늘었다. 적립식펀드 자금이 증시로 들어온 데다 저가 매수를 노린 스마트머니와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가 유입된 영향이었다. 하지만 펀드 평가액인 순자산 총액은 지난해 말 318조 원에서 24일 291조 원으로 줄었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는 “올해는 펀드가 떼돈을 벌어다 줄 것이란 환상이 깨진 한 해였다”며 “‘과거의 성과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증시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