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史 새로쓴 19세 영웅
런던서 금빛 선물할게요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다. 8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 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선사한 ‘마린 보이’ 박태환(19·단국대)이 그렇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3관왕,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 금메달로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박태환은 지난해 말 방황했다. 반짝 인기에 훈련을 등한시했다. 기록은 뒷걸음질쳤다.
너무 빠른 성공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스타트 라인에 섰다가 심판의 ‘준비’란 구령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헤엄 한 번 쳐보지 못하고 예선 탈락한 아픔을 잊지 않겠다던 각오가 사라진 듯했다.
박태환은 변했다. 노 감독과 송홍선 체육과학연구원 박사의 지시에 따라 물살을 갈랐다. 하루 최대 7시간의 체력 및 지구력, 스피드 훈련을 견뎌냈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쭐한 마음에 훈련을 등한시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국민과 약속한 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박태환은 자신을 다스렸다. 10월 전국체전 직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도 웨이트트레이닝과 수영으로 몸만들기에 집중했다.
박태환은 내년 1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로 6주간의 전지훈련을 떠난다.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일찌감치 지옥훈련을 시작한다. 베이징 올림픽 400m 동메달리스트 라슨 젠슨(미국)을 키워낸 데이브 살로 감독의 지도를 받을 예정이다.
“올림픽 금메달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최정상의 선수로 거듭나기 위해 선진 수영 기술을 익히고 싶어요. 영어 실력도 키워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영어로 인터뷰를 할 생각입니다.”
박태환은 그동안 힘들어했던 자유형 1500m 훈련에 집중할 계획이다. 단거리와 장거리를 모두 석권하겠다는 구상이다.
“도하 아시아경기 자유형 1500m에서 아시아기록(14분55초03)을 세운 뒤 더 좋은 기록을 내지 못해 아쉬웠어요. 중국의 장린 기록(14분45초84)을 따라잡고 싶어요.”
박태환의 우상은 자유형 1500m 세계기록(14분34초56)을 보유한 그랜트 해킷(호주). 그의 기록을 넘어서는 게 최종 목표다.
박태환은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에 대해 “내가 성장한 동아수영대회를 주최하는 동아일보에서 뜻 깊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피겨여왕 김연아
국민에게 웃음-희망 준 별
팬 성원에 훈련도 즐거워
김연아(18·군포 수리고)는 올해 각종 여론 조사에서 한국인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 인물 1위로 꼽혔다.
김연아의 인기는 특정 연령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상업적으로도 연예계 톱스타를 능가하는 재능과 끼를 갖췄다는 평가다. ‘피겨 불모지에서 세계 정상에 도달한 예쁜 선수’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의 행복한 모습 때문이지 않을까.
김연아는 이달 중순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갑내기 라이벌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에게 져 2위에 그쳤다. 하지만 환한 미소는 잃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신선하다.
김연아를 주니어 시절부터 보아온 기자가 보기에도 그는 매년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행복, 인기, 피겨 인생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봤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나날이 진화하는 데 있다.
“예전엔 기술을 익히고 이를 경기에서 얼마나 잘 보여줄지에만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데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 씨 등 외국인 지도자들과 한 팀을 이루면서 기술 외의 다른 부분, 즉 스케이팅을 즐기고 관중과 그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행복의 90% 이상은 팬 덕분인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인기가 부담이 되진 않을까.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걸 이겨내야 최고의 선수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제가 받은 인형이 2000개 정도래요. 인기를 실감하기보다는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고된 훈련 속에 그가 얻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잃은 것은 평범한 일상과 학교생활이에요. 하지만 이 정도는 제가 충분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죠. 저를 위해 가족이 희생한 부분이 더 많았거든요. 어릴 때 제 고집과 승부욕이 힘든 훈련을 이기는 힘이었다면 지금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큰 힘이에요.”
내년에 고려대에 입학하는 김연아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까지는 무늬만 대학생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 데뷔 첫 시즌의 마지막 대회였던 2007년 도쿄 세계선수권을 3위로 끝내고 난 뒤 “순위보다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기를 펼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선의 결과는 만족한 연기를 하고 1등까지 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를 택하라면 만족한 연기가 우선이에요. 성적을 좇다 보면 다른 선수들의 경기 결과에 신경이 쓰여 경기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죠.”
김연아는 “아름다운 연기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싶다. 오래 기억되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25일 자선 아이스쇼라는 ‘선물’을 남기고 28일 훈련을 위해 캐나다로 떠났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