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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밖 흥행 과속?… 별 느낌 없어요”

입력 | 2008-12-30 03:02:00

데뷔작 ‘과속스캔들’로 흥행에 성공한 강형철 감독은 “다음에는 양궁 같은 비인기종목을 소재로 탄탄한 이야기에 유머를 적절히 섞은 스포츠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 데뷔작 ‘과속스캔들’ 돌풍 강형철 감독

‘잘 만들어놓고 제목 잘못 붙인 영화’로 소문난 ‘과속스캔들’의 연말 흥행 성적이 놀랍다.

29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3일 개봉 이후 이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373만 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668만 명) ‘추격자’(507만 명) ‘강철중’(430만 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404만 명)에 이어 2008년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흥행 5위다.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연말에 화제작이 많아 걱정이 컸는데 과속스캔들의 선전에 배급사도 놀라고 있다”며 “내년 1월 초에 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데뷔작으로 장외홈런을 날린 강형철(34) 감독을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강 감독은 “매사 덤덤한 성격이라 관객이 많이 왔다는 얘기에도 별 느낌이 없다”며 싱긋 웃었다.

“혼자 방에 앉아서 낄낄거리면서 써내려간 이야기로 적잖은 사람들과 소통했다는 게 기쁘고 신기하긴 해요. 하지만 들뜬 기분이나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습니다.”

‘과속스캔들’은 30대 독신 남자가 존재를 몰랐던 딸과 손자를 만나 겪는 이야기. 한때 청춘스타였던 라디오DJ 남현수(차태현), 그가 고교 시절 사랑했던 옆집 누나가 현수 모르게 낳은 딸 정남(박보영), 그녀의 아들인 유치원생 기동(왕석현) 등 특이한 조합의 삼대(三代)가 주인공이다. 갑자기 나타난 딸, 손자와 티격태격하며 더불어 살게 되면서 자기중심적인 ‘애 어른’ 현수는 책임감 있는 사내로 한 뼘 성장한다.

“현수의 모델은 접니다. 부모님이 지방에 계셔서 대학 다닐 때부터 죽 혼자 살았는데, 제가 현수처럼 깔끔 떠는 스타일이거든요. 친구들이 예고 없이 집에 쳐들어오면 괴로워하다가 막상 가버리면 허전해하죠. 정남과 기동이 떠나간 아침에 현수가 혼자 앉아서 라면 그릇 붙들고 쓸쓸해하는 장면에는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어요. 숨겨둔 딸이나 손자가 있느냐고요? 큰일 날 말씀을….”(웃음)

개봉 전 ‘과속스캔들’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실속 없는 이야기에 허무한 농담을 덧입힌 흔한 싸구려 코미디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실체를 확인한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에 힘입어 예매 증가 추세가 탄력을 받은 것은 개봉 둘째 주부터였다.

“인터뷰 때마다 제목에 대한 질문을 받아요. 제목이 어색하다면 제일 큰 책임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한 저에게 있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원래 아이디어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지도 못했고, 더 나은 대안을 내지도 못했으니까요.”

완성된 시나리오의 제목은 ‘과속삼대’였다. 강 감독은 주연 세 사람이 고풍스럽게 차려입고 찍은 흑백 기념사진에 한자로 제목을 박은 포스터를 생각했다. 허우샤오셴의 걸작 ‘비정성시’ 마지막 장면을 패러디하려던 의도였다.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수없이 회의한 끝에 ‘스캔들’로 바꿨지만 다들 찝찝해했죠. 늦었지만 ‘이 영화의 제목을 지어주세요’ 같은 이벤트를 해보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이 궁리하면 어떤 제목이 나올까 궁금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제목으로 잘되고 있잖아요. 만족합니다.”

흥행이 안 됐으면 제목을 원망할 뻔했다.

그는 “음…. 아니라고 할 수 없네요”라며 웃었다.

강 감독은 경영학을 공부한 뒤 2년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다시 대학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미술을 배울까, 음악가가 돼 볼까 혼자 책을 사서 이것저것 공부했던 이 무렵 고민의 흔적이 ‘과속스캔들’ 주요 배경인 현수의 집 디자인에 숨어 있다.

“관심 두고 들춰 봤던 잡학(雜學) 가운데 공간 디자인도 있었거든요. 이 영화의 뼈대는 가족의 중요함에 대한 이야기예요. 미술감독과 상의해서 일부러 사람들의 동선이 불편하게 엇갈리도록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혼자 불편 없이 지내던 현수가 부대끼고 엉기면서 은근히 가족을 깨닫게 하는 장치죠. 눈치 못 채셨다고요? 그럼 한 번 더 눈여겨봐 주세요.”(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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