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요즘 한나라당이 통과시키려는 85개 중점처리 법안 중 상당수에 ‘MB 악법’ ‘반민주 악법’ ‘경제 악법’이라고 딱지를 붙여놓고 결사 저지를 외치고 있다. 어떤 법이 정의로운 것인지에 관해서는 수많은 이론과 학설이 존재한다. 악법(惡法)과 선법(善法)도 어떤 가치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좋거나 나쁜 법을 판단하는 공통 기준이 있다. 바로 ‘백성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다.
▷다산 정약용은 1794년 피폐한 농촌과 참담한 백성들의 삶을 보고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이존국법 이중민생(以尊國法 以重民生)’이라고 썼다(박석무 저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국법을 존엄하게 하고 민생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국법을 존중하면서도 민생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선정(善政)의 요체임을 설파한 것이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말도 있다. 여기서 ‘가혹한 정치’는 ‘민생을 돌보지 않는 정치’로 대체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중점 처리하겠다는 법안 중에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관련된 금융지주회사법, 금산분리 완화를 규정한 은행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이 들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경제 살리기를 위한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 많다. 하지만 국민은 대체 이들 법안이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법인지, 야당 주장대로 ‘악법’인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이 법안이 어떻게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대(對)국민 법안설명회라도 가져야 할 판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0년대 초반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연방정부의 적극 개입 정책에 상하원의 공화당 극렬 보수파들이 사사건건 반대하자 직접 대국민 설득 작업을 벌여 난국을 돌파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날로 어려워지는데도 국회 본회의장은 오늘도 철제 사다리와 나무 걸상들로 꽉 막혀 있다. 민생의 고통에 눈귀 막은 국회의원들에게 꼬박꼬박 세비(歲費)를 주는 ‘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법률’이야말로 이 시대 최악의 법이 아닐까.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