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의장 ‘마지막 중재안’ 발표 정치권 반응
“모양새만 강조… 몸사리기 급급” 강한 불만
김형오 국회의장이 “31일 본회의를 열어 여야가 합의한 민생법안만 처리하겠다”며 29일 여야 간 대화를 촉구하자 한나라당은 “연내 법안 처리는 물 건너갔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박희태 대표는 “어려움에 허덕이는 많은 국민이 그렇게 목마르게 바라는 법안들의 연내 처리가 무산되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의장이) 상황을 너무 순진하게 본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의장이 모양새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너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채 연내 법안 처리만 공언해 온 원내 지도부의 전략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불평도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본회의장만 빼앗기지 않았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결국 민주당의 막무가내 농성정치에 172석 여당과 국회의장이 모두 손을 든 꼴”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동안 여권과 김 의장 사이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있었는지 의구심을 보이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일부 의원이 쟁점법안 처리 문제에 대해 “굳이 야당이 반대하는데 지금 꼭 해야 하느냐”며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한가로운’ 자세를 보인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김 의장의 최종 선택에 기대하는 눈치도 감지된다. 한나라당이 야당과 대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김 의장이 민주당의 본회의장 농성을 강제 해산하고 회기가 끝날 즈음 직권상정을 통한 법안 처리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여론을 의식해 어설프게 야당과 타협하는 실수만 저지르지 않으면 비록 내년으로 법안 처리가 넘어가더라도 당초 목표했던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민주 “직권상정 않겠다 약속부터 하라”▼
의장 중재안 비판속 ‘일단 선전’ 자체 평가
김형오 국회의장이 29일 밤 12시까지 국회 본회의장 점거를 풀지 않으면 ‘질서유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데 대해 민주당은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반발했다.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김 의장이 쟁점법안에 대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없이 일방적으로 본회의장을 비우라며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의장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비판을 쏟아냈지만 ‘법안전쟁’ 국면에서 일단 선전하고 있다는 게 자체 평가다.
김 의장이 본회의장 퇴거를 명령했지만 한나라당의 연내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하고, 여야 간 대화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날 여론을 신경 쓰며 향후 전략 짜기에 골몰했다.
경호권 발동에 대비해 의원들의 행동지침을 공지하는 등 본격적인 몸싸움 태세를 갖추는 한편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도 참여했다.
민주당이 막판 협상에 나선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될 것으로 기대해서라기보다는 대화를 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측면이 크다. 국회 파행이 길어지면서 자칫 민주당의 대화 거부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일 것을 우려한 제스처다.
한 핵심 당직자는 “한나라당과 김 의장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권상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직권상정을 한다면 결사 항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靑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청와대는 직접적인 언급은 자제했지만 김형오 국회의장의 선택에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 여야 대치는) 국민적 소망인 경제 살리기에 걸림돌이 되는 행위”라며 “김 의장도 국민적 기대가 어디에 있는지 잘 헤아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자꾸 민생개혁 법안, 이념 법안이 따로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다 민생을 위해 한 덩어리로 필요한 법안들”이라며 “이들 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여망과 기대”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라며 “현 상황은 정치적 명분을 놓고 감정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결국엔 김 의장이 임시국회 마지막 날에는 어떤 식으로든 쟁점 법안들을 상정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