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도 성금이 오히려 크게 늘었고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많았어요. 올해는 더 힘들 거라고 다들 말하지만 아직 한국사회에 이웃사랑의 마음이 살아있는 만큼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50년 동안 사랑의 종을 울린 구세군의 산 증인 김석태(83) 옹은 아직 우리 사회에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희망의 미소를 지었다.
평안남도 영원 출신인 김 옹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징병됐다가 9·28서울 수복 때 포로로 잡힌 뒤 전향해 국군으로 3년간 복무했다. 혈혈단신의 김 옹은 1956년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교하면서 구세군과 첫 인연을 맺었다.
김 옹은 구세군에서 아내(임정선·72)도 만나고 구세군 사관학교 교장과 구세군 한국사령관까지 지냈다.
세월 따라 직급도 얼굴도 변했지만 그에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웃사랑의 정신이다.
그는 구세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래 53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겨울이면 빨간 구세군 냄비를 들고 거리에 나가 사랑의 종을 울려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에도 구세군인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모금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아들이 이제 나이도 있으니 제발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데 어떻게 나만 편하자고 모른 척 하겠어요. 또 제복입고 구세군 냄비를 들고 나갔죠."
추운 날씨에 무리하는 바람에 감기에 걸려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김 옹은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며 적지 않은 감동과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아이들 몇 명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다가 딱 구세군 냄비를 보더니만 자신들의 용돈을 다 털어 넣고 가더라고요. 돈이 없는 친구한테는 다른 친구가 돈을 빌려주고요. 그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보며 새삼스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넉넉해 보이는 사람들은 구세군을 냉정히 지나치고 장애인이나 정말 힘들고 고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작은 정성을 보태곤 해요. 그럴 때면 조금 안타깝죠. 새해에는 사람들이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이웃사랑의 마음을 조금만 더 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옹에게 "돌아오는 올 겨울에도 또 구세군 냄비를 들고 나가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겨울에 구세군 냄비를 들고 또 거리로 나갈 겁니다. 거리로 나가면 희망이 보이니까요."
최악의 경제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구세군 모금액(잠정)은 32억1500만 원으로 2007년(31억1800만 원)보다 1억 원 가까이 늘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