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종교배’… 불황속 ‘미디어의 꽃’ 피우다
《2009년은 국내 신문 방송 통신 인터넷이 어우러지는 ‘미디어 융합 원년’으로, 미디어 산업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이 이념 장벽에 가로막혀 미디어 산업의 도약을 도모하지 못하는 사이에 미국 등은 글로벌 미디어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새롭고 다양한 매체를 어떻게 수용하고 변용해 나갔는지를 시리즈로 살펴본다.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을 비롯해 타임워너, 월트디즈니, 바이어컴, 베텔스만, 비방디유니버설, 상하이미디어그룹 등과 영국의 BBC, 일본의 NHK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뉴미디어 및 글로벌 전략을 알아본다. 아울러 한국 미디어들이 경쟁력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함께 살펴본다.》
多매체 카드로 中-인도등 신흥시장에 10여년 공들여
작년 매출 15% 증가… 일자리 창출 현지경제도 활력
인도 지역밀착형 프로 인기… 53개국 3억명에 방송
지난해 11월 테러 사건이 발생했던 인도 뭄바이는 인도 개혁개방의 상징이며 경제 수도다. ‘볼리우드(Bollywood)’로 대표되는 인도 영화와 방송 산업의 중심지로 수많은 글로벌미디어 그룹의 인도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볼리우드’는 뭄바이의 옛 이름인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 이곳에선 1년에 10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된다.
2008년 12월 16일 뭄바이 시내 북쪽에 있는 영화촬영 복합 스튜디오인 ‘필름시티(Film City)’를 찾았다. 이곳에서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인 ‘20세기 폭스’와 ‘스타TV’가 합작한 ‘폭스스타 스튜디오’가 내년 4월에 개봉할 볼리우드 영화 ‘속사포 무르간’을 제작하고 있었다.
20세기 폭스와 스타TV는 세계 미디어 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 회장 소유의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 소속 기업이다. ‘폭스스타 스튜디오’의 최고경영자(CEO)인 비제이 싱 대표는 “영국의 축구처럼 인도인에겐 볼리우드 영화가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문화 상품”이라며 “뉴스코프뿐 아니라 워너브러더스, 소니엔터테인먼트 등 글로벌 미디어그룹들도 인도 시장 개척을 위해 볼리우드 영화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시장 개방이 가져온 미디어 빅뱅
뉴스코프는 글로벌 경제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2008년 329억9600만 달러의 매출액(영업이익 54억 달러)을 기록해 전년도보다 15% 성장했다. 뉴스코프는 신문, 방송, 영화, 출판, 인터넷까지 거느린 미디어 제국이다.
머독 회장은 ‘2008 뉴스코프 결산보고서’에서 “뉴스코프의 성장은 ‘글로벌’과 ‘디지털’이라는 두 가지 트렌드에서 창출된 이익”이라며 “미국 경제의 불안에도 중국, 인도, 라틴아메리카 등 새로 떠오르는 시장에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뤄 냈다”고 평가했다. 특히 머독 회장이 지난 1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온 시장이 중국과 인도다. 머독 회장은 2008년 11월 호주에서 한 연설에서 “중국과 인도에서 향후 30년간 20억 명의 새로운 중산층이 탄생해 글로벌 문화 지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방송허가권을 통제했다. 국영방송 두르다르샨 외에 별다른 엔터테인먼트 채널이 없었다. 그러나 1991년 스타TV, CNN을 필두로 글로벌 미디어그룹이 들어오면서 방송시장의 빅뱅이 일어났다. 인도에선 신문 기업 외국인에 대한 방송 소유 제한이 없으며, 다만 외국 기업이 뉴스 채널 지분의 26% 이상을 갖지 못하게 할 뿐이다. 이 때문에 시청 가구가 1억2000만 가구로 세계 3위인 인도 시장을 잡기 위해 뉴스코프, 소니엔터테인먼트, 바이어컴의 MTV, 월트디즈니, BBC 등 글로벌미디어 기업들이 각축을 벌였다. 그 결과 인도의 미디어산업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19% 성장했으며 2009년에는 인도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채널이 700여 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2007년 인도 상공회의소(FICCI)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도 TV산업의 규모는 광고, 시청료 등 수익 총계가 1910억 루피(약 4조5572억 원)에 이르며 앞으로 5년 내 22%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한다. 스타TV를 통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화교권을 공략해 왔던 머독 회장은 중국 본토에서도 1996년 현지 합작회사인 ‘피닉스TV’를 개국했다. 2001년에는 중국 정부가 최초로 허가해 준 외국계 종합오락채널 ‘싱쿵(星空)TV’를 개국했다. 싱쿵TV는 광저우 지역의 최고 인기채널이며 중국 본토에서 5000만 가구가 시청하고 있다. 뉴스코프가 소유하고 있는 음악채널 ‘채널V 차이나’는 한때 2억260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 현지문화 개발과 글로벌 진출
수백 개 채널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인도에서 지난 8년 동안 시청률과 광고 수입에서 1위를 차지한 채널은 뉴스코프 산하의 ‘스타플러스’다. 설립 초기엔 영어로 ‘베이 워치’ 같은 미국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초기에는 서구 문화의 침략과 더불어 인도 문화 산업의 기반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스타플러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8년 전 현지에서 힌두어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부터. 스타플러스는 샤루칸 같은 볼리우드 영화스타를 MC로 내세운 리얼리티 쇼와 가족드라마 등으로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 스타TV는 이후 타밀어, 벵골어 등 지역 언어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방송사도 잇달아 설립했다.
뉴스코프의 네트워크는 인도 현지 프로그램의 세계 진출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스타TV 그룹’은 동아시아는 물론 중동, 영국, 미국, 남미 등 53개국에서 63개 TV 채널을 10개 언어로 3억 명 이상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볼리우드 영화는 인도인 이민자가 많은 미국, 영국의 스타TV 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중국도 싱쿵TV의 송출을 허가하는 대신 국가홍보채널인 CCTV9의 미국, 영국 내 송출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현재 중국 CCTV가 프라임타임대 한류 프로그램의 방영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싱쿵TV는 ‘커피프린스 1호점’ ‘식객’ ‘베토벤 바이러스’ ‘온 에어’ ‘태양의 여자’ ‘비(rain) 콘서트’ 등을 프라임타임대에 편성해 한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뉴스코프는 대만의 ‘금마장 영화제’를 공동 주최해 국제적 이벤트로 육성하고 있다.
아누팜 바수데프 스타TV인디아 부회장은 “처음엔 글로벌 미디어그룹들이 인도 고유문화를 파괴할 것이란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인도의 방송영상 콘텐츠가 무수히 개발됐다”며 “전 세계에 인도의 콘텐츠를 수출하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뭄바이·홍콩=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스타TV 폴 이엘로 사장 ▼
“글로벌기업은 지역콘텐츠 세계에 파는 수출창구”
“뉴스코프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루퍼트 머독 회장이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임과 동시에 ‘로컬 비즈니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폴 이엘로(사진) 스타TV 사장을 지난해 12월 19일 홍콩에 있는 스타TV 본사에서 만났다. 폴 사장은 미국의 금융회사인 모건 스탠리에서 루퍼트 머독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해온 경영인이다. 머독 회장의 차남으로 차기 미디어 황제로 거론되는 제임스 머독 회장(36·뉴스코프 유럽·아시아 담당 최고경영자)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진출로 현지의 문화와 방송 제작시스템이 파괴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우리는 지역문화의 개발자(developer)이자 수출자(exporter)다. 제국주의자(imperialist)가 아니다. 인도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는 미국이나 호주가 아니라 현지 기업이다. 현지의 언어와 스토리를 갖고 그곳 최고의 배우와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만든다. 우리는 지역문화에 기반을 둔 콘텐츠를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 내다파는 역할을 한다. 인도를 비롯한 수많은 국가에서 로컬 방송 산업의 규모를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문화 제국주의’는 현실에서 변화나 경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다.”
―뉴미디어 시대에도 머독 회장은 왜 여전히 신문에 대한 매력을 갖고 있는가.
“머독은 신문이 형태가 바뀔지라도 뉴스 콘텐츠 원천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신문사 경영인으로 출발한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콘텐츠 생산에 관심이 많다. 뉴스코프는 케이블, 위성방송 등 콘텐츠 배급망에도 투자를 해왔지만, 대부분 기업의 가치는 영화, 방송프로그램, 신문, 출판 등 콘텐츠 생산에서 가치를 창조한다.”
―한류 방송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은 지난 7, 8년간 영화, 드라마에서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점차 글로벌 미디어그룹들이 현지에서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에서 강력한 로컬 프로덕션들이 경쟁하고 있다. 한국이 콘텐츠에서 높은 질로 승부할 수 없다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은 국제적인 마켓에서 통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뉴스코프가 ‘마이스페이스닷컴’ ‘훌루’ 등 인터넷 사업도 확장해 가고 있는 이유는….
“인터넷은 콘텐츠 확산에 좋은 비즈니스다. 마이스페이스닷컴은 음악과 영화를 공유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커뮤니티 자체도 콘텐츠이다.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 누가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훌루는 뉴스코프가 갖고 있는 콘텐츠를 저작권에 맞게 배포하는 회사다. 일방적인 방송이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반면 구글은 자체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기업이 아니다.”
▼ 뉴스코퍼레이션은 ▼
신문… TV… 영화… 52개국 780개 미디어 기업 소유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은 1952년 호주에 있는 루퍼트 머독의 신문사 아델레이드 뉴스에서 시작됐다. 머독은 인수합병을 통해 영국의 ‘더 선’ ‘더 타임스’, 미국의 ‘폭스TV’ ‘월스트리트저널’, 홍콩의 ‘스타TV’, 미국의 ‘마이스페이스닷컴’ 등 신문, 잡지, 출판, 영화,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위성 방송, 뉴디미어 분야에서 광범위한 사업영역을 구축했다.
뉴스코프는 현재 세계 52개국에 170여 개 신문사를 포함해 780여 개 미디어 관련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위성방송 사업은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에 걸쳐서 전 세계 면적의 3분의 2 정도를 커버하고 있다.
뉴스코프는 미디어기업 인수에 여전히 관심을 쏟고 있다. 최근엔 뉴욕타임스에도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으며, 미국의 기상 전문 채널인 웨더채널도 50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설이 나돌았다. 인도 TV시장에는 1억 달러를 들여 6개 TV채널을 추가로 출범시킬 예정이다.
뉴스코프는 신문방송 분야뿐만 아니라 인터넷 쪽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2005년 5억8000만 달러로 ‘미국판 싸이월드’인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인수했다. 전 세계적으로 2억 명 이상의 회원을 갖고 있는 마이스페이스는 뉴스코프의 영화, 방송, 뉴스 동영상을 서비스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후 마이스페이스뮤직을 설립해 애플 아이튠스의 독주 저지에 나섰다. 마이스페이스뮤직은 소니BMG, EMI, 워너뮤직, 유니버설뮤직 등 세계 4대 음반사와 제휴해 음원을 서비스하고 있다.
뉴스코프는 2008년 3월 NBC, AOL, MSN, 야후 등과 온라인 비디오 사이트 ‘훌루’(Hulu.com)를 출범시켜 구글의 유튜브와 경쟁을 시작했다. ‘훌루’는 NBC와 폭스, 소니픽처스 등의 TV쇼와 드라마, 영화 등을 광고를 붙여 공짜로 보여주는 동영상 공유사이트. 거대 미디어그룹들이 갖고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없는 것이 장점. ‘훌루’는 2008년 말 동영상 시청순위에서 6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일반 동영상 사이트의 평균 시청시간은 3분이었으나, 훌루의 경우 시청자들은 평균 11.6분 동안 시청한 것으로 나타나 광고효과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에 본사가 있는 뉴스코프는 호주, 미국, 유럽, 영국, 아시아 등지의 국가에서 6만4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2008년 회사의 매출액 현황을 살펴보면 총 329억9600만 달러 중 영화 엔터테인먼트가 20.3%, 신문 18.9%, 텔레비전 17.6%, 케이블 네트워크 15.1%, 위성방송 11.4%, 출판 4.2%, 잡지 3.4%, 기타 분야가 9%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