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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 ‘코리아 루트’ 뚫는다

입력 | 2009-01-01 00:11:00


박영석 씨 2000m 남서벽 개척 4전5기 도전

“내 사전에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산악인 박영석(45·골드윈코리아 이사) 씨가 새해 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50m) 남서벽에 다시 도전한다.

박 대장은 2007년 봄과 지난해 가을 남서벽 신 루트 개척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7년에는 정상 부근에서 눈사태가 나 박 대장이 가족처럼 여기던 오희준, 이현조 두 대원을 잃고 철수했다. 애지중지하던 갈깃머리를 스스로 밀고 각오를 다지며 나섰던 두 번째 도전에선 루트 개척에 불과 50여 m를 남겨두고 악천후로 물러섰다.

○ 지금까지 英-러 단 두차례만 성공

에베레스트 남서벽은 눈이 쌓이지 않을 정도의 급경사 암벽이 정상 부근 남동릉까지 2000여 m에 걸쳐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에베레스트 최악의 난코스.

에베레스트에는 정상에 이르는 루트가 15개 있으며 가장 많이 애용되는 루트는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올랐던 남동릉 코스다.

남서벽을 통한 루트는 1975년 영국 크리스 보닝턴 팀이 개척한 루트와 이후 러시아 팀이 낸 루트 등 2개 코스뿐이다. 그나마 워낙 험해 웬만한 산악인들은 엄두를 못내는 코스다.

한국 원정대는 지금까지 여섯 번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박 대장은 이 중 네 번의 도전에 참여했다. 올해 초 도전이 박 대장으로선 다섯 번째 도전인 셈.

남서벽 등정은 박 대장에게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첫 도전은 1991년 전국 합동원정대 대원으로 시도한 것인데 남서벽 캠프3(7000m)를 출발해 캠프4(7700m)로 가던 중 수백 m를 추락해 만신창이가 됐다. 마침 미국 원정대 팀 닥터의 도움으로 응급처치를 받은 뒤 베이스캠프에서 헬기로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 후송돼 생명의 위기를 넘겼다.

1993년 두 번째 도전 때는 8500m 지점까지 올랐으나 악천후로 루트를 남동릉으로 바꿨고 대신 무산소로 정상을 밟았다. 당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은 국내에선 처음. 하지만 이 원정에서 두 명의 대원을 잃었다.

○ 2007년 정상 앞두고 두대원 참변

남서벽에 다시 도전한 것은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07년 3월. 1977년 고상돈(1948∼1979)의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에 맞춘 이 헌정 등반에서 오희준, 이현조 두 대원은 정상 공격을 눈앞에 둔 마지막 캠프에서 눈사태를 맞았다.

박 대장은 그때 현역 은퇴까지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 루트 개척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두 대원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며 지난해 9월 오희준, 이현조 두 대원 헌정 등반과 함께 ‘코리아 신 루트 개척’에 다시 나섰지만 그때도 하늘은 도와주지 않았다.

산악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6000m 이상은 ‘신의 영역’이라고.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기상 등 주위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3월 중순 출발할 예정인 도전에 대해 박 대장은 자신감에 차 있다. 지난해에도 비록 실패했지만 가장 힘든 루트 개척은 사실상 거의 끝났기 때문이다. 날씨만 받쳐주면 다 된 그림에 마지막 점만 찍으면 되는 셈이다.

2005년 북극점 도달, 2006년 에베레스트 등반, 2007년 베링해협 횡단 등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숱한 도전에 동참했던 동아일보는 박 대장의 ‘4전 5기’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에도 함께할 예정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박영석 대장 주요 등반 기록▼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8년 2개월)

―세계 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 등정(6개봉)

―동계 랑탕리 세계 초등(1989년)

―아시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1993년)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2004년)

―세계 최초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2005년)

―단일팀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성공(2006년)

▼요리사… 사진작가… 11명의 외인구단▼

원정대 멤버 주특기 제각각… 가족같은 분위기로 최상의 팀워크

“나는 단독 등반하는 산악인이 가장 싫다.”

박영석 대장의 이 말은 그의 등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숱한 원정에는 항상 형제 같고 가족 같은 대원들이 함께했다. 박 대장에게 원정의 성공이란 끈끈한 팀워크로 빚어낼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며 또 그럴 때 가장 값진 것이다.

3월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에 함께할 대원들을 살펴보자. 대원들은 지난해 가을 남서벽에 도전했던 멤버가 그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박 대장을 포함해 11명 정도가 될 예정.

박 대장은 지난해 원정이 끝난 뒤 “팀워크가 매우 좋았다”고 평가했다.

홍성택(41) 대원은 올해 남서벽 원정 중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졌지만 박 대장이 굳게 신뢰하는 동료다. 2005년 박 대장의 북극점 원정을 함께했다. 1995년 에베레스트를 올랐고 2007년 봄 히말라야 로체 남벽(해발 8516m)에 도전했다.

박 대장이 이끄는 세계탐험협회 소속인 이형모(29) 대원은 2007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부터 계속 함께하고 있다. 사이클 마니아이며 운동광인 이 대원은 언제나 힘이 넘친다. 지난해 남서벽 도전 때는 정상 공격조였다.

힘에서 이 대원에 결코 밀리지 않고 노련미까지 갖춘 데다 요리 솜씨도 발군인 신동민(34) 대원은 원정대의 팔방미인이다. 1995년 알프스 3대 북벽을 올랐고 2000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등반했다. 2007년 로체 남벽을 등반한 그 역시 지난해 남서벽 도전 때 정상 공격조였다.

원정대의 홍일점인 김영미(28) 대원은 작은 체격에도 항상 여유가 넘친다. 지난해 남서벽 원정 때 원정대 홈페이지에 올린 감칠맛 나는 원정일지는 대부분 김 대원이 올린 것이다. 그림, 글 솜씨도 뛰어나지만 등반 능력도 수준급이다.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국내 여성 산악인으로는 오은선(42) 씨에 이어 두 번째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진재창(42) 대원은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 등반, 1998년 레인봉(7134m) 등정 등 히말라야에서 등반 경험을 많이 쌓았다.

이 외에도 강기석(30), 송준교(35), 박상문(31), 이한구(40) 대원 등이 함께 참여한다. 이한구 대원은 2007년 남서벽 도전 때부터 함께한 국내 최고의 산악 전문 사진작가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