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년 벽두부터…” 시위에 묻혀버린 “새해소망”

입력 | 2009-01-01 21:22:00

기축년 새해가 시작된 1일 서울 보신각 종로 거리가 '제야의 종' 행사를 찾은 시민들과 촛불집회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연합


기축년 새해가 시작되던 1일 0시경 서울 종로구 보신각.

한 70대 노인은 "매년 새해에 보신각 타종을 보러 왔는데 이렇게 새해 벽두부터 시위대가 점거를 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은 처음 본다. 정치적인 이념과 상관 없이 최소한 오늘만큼은 촛불을 들어서는 안 되는 날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희망하는 '제야의 종' 행사가 열린 이날 보신각 일대엔 시민 8만여 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4000여 명의 시위대로 인해 타종 행사인지 집회 현장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다함께, 전대협, 아고라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단체들의 깃발 수십 개가 휘날리는데다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나눠준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노란 풍선 5000여 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나눠준 피켓들이 시민들의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

시위대는 촛불을 들고 "이명박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새해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문구를 적은 기구들을 하늘에 띄웠다. 하늘로 올라가는 수십 개의 기구는 불빛을 뿜어내며 하늘로 사라졌지만 거기에는 새해 소망이 아닌 정치적 이념과 구호만 담겨 있었다.

타종이 끝나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사말이 시작되자 일부 시위대는 소리 지르며 야유했다.

행사에 참석하려던 일부 시민들은 길목을 막은 경찰,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 등으로 인해 곳곳에서 불편을 겪게 되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타종 행사를 구경하러 나왔다던 40대 김모 씨는 "올 한 해를 시끄럽게 했던 촛불이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켜질 줄은 몰랐다"며 서둘러 보신각 앞을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15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참석자가 많이 줄었다"며 "추운 날씨와 시위대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그냥 집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5시경부터 현장에 출동한 1만5000여 명의 젊은 전·의경들과 경찰관들도 가족과 떨어진 곳에서 새해를 맞으며 추위에 떨어야 했다.

2008년 여름 내내 서울 청계광장 등 시민의 공간을 빼앗았던 촛불 시위대. 이들은 송구영신의 날 시민들의 경건한 타종 행사마저 정치 구호가 난무하는 시위의 장(場)으로 만들어버렸다.

황형준기자 constant25@donga.com